[광화문에서/박정훈]오원춘 용서하기
박정훈 사회부 차장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살해하고 시신을 358조각으로 무참하게 훼손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조선족 오원춘(사진)이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양회성 기자
범죄로 가족을 잃은 유족에겐 죽는 것보다 어려운 게 용서다. 영화 ‘세븐데이즈’는 “딸을 죽인 범인에게 교수형은 사치”라며 직접 화형을 집행하는 모정(母情)을 그렸다. 교수형조차 사치라는 그 짙은 복수심을 일반인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오원춘(42)에게 스물여덟 살 난 딸을 잃은 부모와 누이를 잃은 남동생의 복수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동생은 30일 통화에서 “솔직히 내 손으로 직접 오원춘을 죽이고 싶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용서에 대해 물었다. 어이없어 했다. “평생 용서하지 못할 거다. 너무 고통스럽다. 고통을 말로 표현하는 순간 너무 작게 표현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수화기로 전해지는 고통의 무게가 버겁게 다가왔다.
법원은 복수의 길을 막아 버렸다. 피해자의 시신을 358조각으로 훼손한 오원춘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항소심 판결이 나던 날, ‘합법적 복수’에 희망을 걸었던 유족들은 참담함에 무너졌다. “얼마나 더 잔인해야 사형을 선고하겠느냐”고 울부짖었다. 대법원은 법을 제대로 적용했는지만 다룰 뿐 형량은 바꾸지 않는다. 그래도 유족은 “사형 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인터넷에는 “판사 가족이 그렇게 죽었어도 무기징역이 나왔겠느냐”는 비난글이 쇄도했다. 제주 올레길에서 살인범에게 누나를 잃은 남성은 법원을 향해 “당신들은 감히 유족의 아픔을 상상도 하지 못한다”며 “사형이 안 나오면 법원 앞에서 분신하겠다”고 했다.
유족의 고통은 살인범의 수형생활 소식에 극대화된다. 조선족인 오원춘은 형이 확정되면 대전교도소나 천안교도소의 외국인 사동에 수용된다. 그곳에서 전문 영양사가 짠 하루 3900원짜리 1식 4찬의 외국인 식단을 받는다. ‘콩밥’이 아닌 쌀 90%의 잡곡밥이다. 주 2회 고기 반찬이 나오고 후식으로 사과나 귤을 먹는다. 커피나 고추장도 사 먹을 수 있다. 하루 1시간 운동 시간도 준다. 도서관에서 책도 보고 위성채널로 중국방송도 시청할 수 있다. 여름엔 선풍기 덕에 시원하고 겨울엔 전기패널로 따뜻하다. 호텔이 따로 없다.
‘외국인은 석방되면 민간 외교사절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국악이나 서예 교육도 받는다. 아프면 교도소 내 의무과 의사에게 진료도 받는다. 독감 예방접종도 가능하다. 병세가 중하면 외부병원에서 무료로 수술까지 해준다. 이 모든 게 인권 차원이다. 처참하게 가족을 앗아간 범인의 인권이 내 세금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유족은 무슨 희망으로 살 수 있을까.
용서. 신이나 성인(聖人)이라면 모르겠지만 인간에게는 참 벅찬 일이다. 그건 초월적 경험도, 종교적 체험도 아닌 현실의 일이다. 고통을 덜겠다는 적극적인 이기심 없이는 결단할 수 없는 난제다.
달라이 라마는 ‘용서’라는 책에서 ‘용서는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이라고 썼다. 성경(잠언 19장 11절)도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라고 했다.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복수는 용서’라는 말, ‘이제 짐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라’는 말…. 칼로 가족의 시신을 베어내는 장면을 매일같이 떠올리는 유족에게는 너무 가혹한 말이 아닌가 싶다.
▶[채널A 영상] “오원춘, 호화 교도소 간다” 소문 알고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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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사회부 차장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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