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광화문에서/이진영]앵커 불패 신화만 깨진 게 아니다

꿈 꾸는 소년 2012. 2. 1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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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5.4(수) 03: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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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진영]앵커 불패 신화만 깨진 게 아니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엄기영 씨가 일냈다. 지는 게 더 힘들다는 선거에서 졌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남자 앵커들은 정계 데뷔전에서 지지 않는다는 불패 신화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국 최장수 앵커 기록을 보유한 신분으로 말이다.

한국 앵커들의 정계 입문사는 한국 최초의 앵커맨에서 시작된다. TBC 앵커 출신 봉두완 씨는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 최다 득표라는 기록을 세우며 금배지를 달았다. 1세대 앵커 MBC 하순봉 씨도 같은 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는 선 굵은 KBS, 지적인 MBC, 도회적인 SBS 앵커를 가리지 않고 줄줄이 국회에 입성했다. KBS 박성범 씨는 야당 중진 의원 정대철 씨를 이겼다. KBS 이윤성, MBC 정동영, SBS 맹형규 씨도 나란히 당선됐다. 이 씨는 “앵커 출신이라 인지도가 높았던 덕을 많이 봤다”고 했다. 하지만 메인 뉴스 진행자로서 쌓은 신뢰도가 없었으면 어려웠을 일이다. 같은 선거에 출마했던 배우 신성일, 최불암, 김희라 씨가 낙마한 사례를 봐도 인지도 덕만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엄 씨가 이번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후보로 발탁된 비결도, 그리고 역전당한 패인도 여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KBS 류근찬 씨에 이어 앵커 출신 정치인 계보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됐던 엄 씨. 인지도에선 경쟁자 최문순 씨를 압도했다. 최 씨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번지점프도 하고 수상스키도 타야 했다.

문제는 신뢰도였다. TV토론을 하는 그를 보고 유권자들은 실망했다.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어느 문제 하나 막힐 것 없을 줄 알았던 앵커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알고 보니 알맹이가 없다” “엄 후보 책상에 대본 하나 놔드려야겠다”며 하나둘 돌아서기 시작했다. 여기에 ‘자원봉사자’들의 불법 선거운동 사건까지 터졌다. 그가 TV토론에서 동문서답하는 영상들은 ‘엄기영 개콘’이라는 제목으로 편집돼 인터넷에 퍼졌다. ‘자봉(자원봉사자) 선생’ ‘엄처구니’ ‘엄기영 트로이 목마설’은 인기 검색어가 됐다. 앵커로서 13년간 쌓아온 신뢰를 까먹는 데는 한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앵커 시스템의 원조인 미국에서 앵커들은 ‘재난 전문 기자’(CNN 앤더슨 쿠퍼) ‘분쟁지역 전문가’(ABC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등 고유의 전문성과 이미지를 내세워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은 신뢰성이다. 앵커를 믿어야 뉴스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미국의 앵커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우리도 앵커가 정치하겠다면 일단 믿고 찍어주는 게 민심이었다.

엄 씨는 선거 결과 발표 후 MBC 방송에서 “개운치가 않다”고 했다. 고교, 직장 후배와 고발전까지 갔던 일을 언급한 소회였다. 하지만 그가 개운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본다. 방송 기자들은 “이제 앵커들은 프롬프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인 줄 알 것이다” “앵커들이 전달하는 뉴스를 누가 믿어주겠느냐”며 ‘엄기영 효과’로 뉴스의 신뢰도가 떨어질까 걱정하고 있다. 온갖 사이비 언론들이 판치는 세상에 지상파 방송의 뉴스마저 믿을 수 없게 된다면 엄청난 사회적 자본의 손실이다. 엄 씨는 앵커 불패 신화만 깬 것이 아니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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