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윤종]불멸
유윤종 문화부장
인간이 시간의 흐름과 생사를 인지하게 된 뒤 불멸의 꿈은 항상 우리와 함께했다. 생물학적 영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꿈은 종교적이거나 상징적인 영생의 추구로 바뀌었다.
소련과 중국 등의 사례를 따라온 북한도 두 번째의 ‘기념용 유해’를 보존하게 된 모양이다. 단지 오래도록 기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만은 아닐 수도 있다. 김정일 사망 이후 ‘새들이 며칠이나 같은 시간에 모여 울었다’는 비(非)유물론적 상징이 동원되는 나라이니 그 인민 중에는 ‘언젠가 두 영도자가 유리관에서 일어나 우리를 영원의 나라로 이끌어 갈 것이다’란 믿음을 갖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방부처리를 했다고 해서 그 모습이 영구히 보존되리라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옛 소련 독재자 스탈린은 1953년 사망한 뒤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레닌 묘에 레닌과 함께 전시됐으나 8년 뒤 인근 땅속으로 이장되는 수모를 겪었다. 수용소와 강제이주 등으로 수천만 명을 죽였다는 사람들의 ‘기억’이 그의 육신을 다시 묻어버린 것이다. 레닌도 언제까지 유리관 안에 누워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할지는 알 수 없다. 14년 전 처음 찾은 붉은광장은 레닌 묘 맞은편 굼백화점 입구에서 울려나오는 록 음악의 강한 비트에 묻혀 있었다. 크렘린에까지 들릴 정도의 볼륨이었다. 소련이 붕괴된 후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레닌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최근까지 러시아에선 몇 차례나 레닌 묘 폐쇄 논란이 일었다.
자신의 영웅을 기리고자 하는 사람이 그의 육신을 보존하고자 하는 욕망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육신만이 꼭 길이 남아야 할 만큼 특별한 것일까. 프랑스 생화학자 앙드레 지오르당은 책 ‘내 몸의 신비’(동문선)에서 “인간은 화학적으로 1년 안에 거의 완전히 바뀐다”고 말한다. 1년 만에 만난 사람은 물질적 차원에서 지난번 만난 그와 다른 사람이다. 신경세포만은 바뀌지 않지만 그 내부 성분은 갱신된다. 지오르당에 따르면 한 개인의 진정한 ‘무덤’은 그의 욕실과 변기 배수구에 있다. 평생 그의 몸을 이루었던 물질 대부분이 이곳으로 빠져나간다. 생애 마지막 몇 달 동안 섭취한 성분이 그의 마지막 육체를 이룰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지막 몸을 생전의 형태로 보존하기보다는 죽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로마 카푸친 프란체스코회의 ‘해골 성당’이 훨씬 경건하고 사실적인 기념물이다. 그곳의 내부 장식은 수백 년 동안 수도원에서 죽은 수사들의 온갖 뼈를 엮어 만들었다. 성당 끝 쪽 해골에는 이렇게 써 있다. “우리의 과거는 당신들의 현재요, 우리의 현재는 당신들의 미래다.”
결국 세상에 미치는 선한 행위, 세상에 내놓은 위대한 업적으로 기억되는 것이 현세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불멸’이요 ‘영생’이 아닐까. 연말을 맞아 ‘불멸’이란 수식어와 자주 동반되는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생각해본다. 나는 올해 내 주변에, 조금 욕심을 부린다면 세상에 어떤 기억할 만한 빛을 비췄는가.
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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