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약점은 있다. 내게도 유일한(?) 약점이 있다. 욱하는 성격이다. 잘나가다가도 성질나면 확 뒤집어엎는다. 가까운 이들의 마음에 상처도 많이 입힌다. 그러나 내가 입는 내면의 상처는 더 깊다.
나는 운전하다가 담배꽁초를 창밖으로 버리는 인간들을 절대 용서 못한다. 이들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자 인류평화의 가장 큰 적이다. 이런 인간들을 목격하면 나는 끝까지 쫓아간다. 그 차를 따라잡아, 창문을 열고 가능한 한 험악한 인상으로 경고를 한다. 그러나 난데없이 욕해대는 낯선 인간에게 웃으며 대응할 사람은 없다. 당연히 거친 욕이 오간다. 결국 “너, 내려” 어쩌고 하면서 멱살잡이까지 간다. 상대방이 나를 알아보기라도 할라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발전한다. 결국 나만 망신당하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처받은 자존심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한술 더 뜬다. ‘당신은 그런 일을 아예 시작하질 말아야지,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고, 결국 당신만 손해 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럼 지구평화는 어떻게 되느냐’고 웅얼거리는 내게, 아내는 내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복사본을 내민다. 고2 때 담임선생님은 내 성격에 대해 이렇게 써놓으셨다. ‘성실하고 과묵한 성격이나 쉽게 격함.’ 아, 그때나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이나 난 하나도 안 변한 것이다.
사람은 절대 안 변한다. 나는 심리학자다. 심리학의 발생지인 독일에서의 13년간의 유학생활을 포함해 30년째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런 내가 요즘 내린 결론이다. 철든 이후 내 성격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바꿀 수도 없다. 그런데도 서점가의 수많은 성공처세서들은 자꾸 ‘너를 바꾸라’고 한다. 그런 책을 읽으며 끝없이 자학한다고 성격이 고쳐질 리 만무건만, 아직도 그 어설픈 미국식 성공처세서들은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각종 리더십 이론은 한술 더 뜬다. 온갖 좋은 이야기는 다 모아놓고 나한테 성인군자가 되란다. 책임자로서 내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내 성격까지 고쳐 도인이 되란다. 리더로서의 책임보다 내 성격을 고치느라 스트레스가 더 쌓인다. 환장할 노릇이다.
‘너를 바꾸라’는 이 문화사적 압력은 우연이 아니다. 130년 된 현대심리학의 역사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너 자신’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드러난 심리적 문제가 그리 명확하지 않을 때는 무의식까지 들춰내며, ‘네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라며 협박해왔다. 온갖 종류의 심리학적 상담, 심리치료는 바로 이 인간의 ‘결함모형’에 기초하고 있다. ‘콤플렉스’, ‘우울’, ‘불안’, ‘성격장애’ 등과 같은 심리학적 개념의 철학적 전제는 ‘부정적 인간관’이라는 뜻이다.
최근 ‘결함모형’에 기초한 현대심리학에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이다. 이제까지 인간의 약점과 부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연구해왔던 현대심리학의 접근방식에 대한 반성이다. 인간의 약점을 고치기보다는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자꾸 키워나가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장점이 있다. 이 장점을 끌어올리면 약점은 저절로 개선된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엄밀한 심리학이 되기에는 아직 많은 이론적 약점이 있지만, 긍정심리학은 평생 ‘나 자신이 문제’라는 자괴심에 시달려온 내겐 큰 위로가 된다.
성격상의 그 치명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난 지금까지 너무 잘 버텨왔다. 요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가까운 이들은 참 심각한 ‘자뻑’ 증상이라며 비웃는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나를 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도대체 누가 날 귀하게 생각할 것인가. 그래서 난 내 모난 성격을 고칠 마음이 전혀 없다. 지금까지 자~알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대로, 그렇게 자~알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대로, 그렇게 자~알 살 것이기 때문이다.
명지대 교수 .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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