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악수의 정치학
▷악수는 원초적인 인사법이다. 선사시대 때 무기를 손에 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보여주기 위해 유래했다. 지금도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인들은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손을 들어 손바닥을 활짝 펴는 인사를 나눈다고 한다. 악수는 이러한 기원 때문에 무기를 드는 오른손으로 하고,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하는 게 예의로 정착됐다. 박 위원장은 요즘 주로 왼손을 이용해 유권자의 손을 살짝 쥐는 정도로 악수하고 있다. 오른손에 붕대를 감지 않았더라면 결례가 되는 악수법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 시기에 힘줘 악수한 습관이 배어 대통령 때도 악력(握力)이 셌다.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손이 약해 청와대에서 손님을 접견할 때 비서들이 대통령 손을 가볍게 잡아달라고 주문했다. 악수할 때 너무 힘을 줘서 손을 꽉 쥐는 ‘파워 레인저’ 악수도 좋지 않지만 죽은 물고기를 만지듯 힘없이 슬쩍 잡는 ‘죽은 물고기’ 악수도 무성의하게 느껴진다. 악수할 때 악력보다 중요한 것은 시선이다. 앞 사람과 악수를 나누면서 시선은 이미 그 다음 사람에게 가 있는 것만큼 무례한 예법(禮法)도 없다. 박 위원장은 최근 정치 신인들에게 “눈은 악수하는 동안 마주하도록 하고 급하더라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말라”고 조언했다.
▷역사상 선거 유세에 악수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18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 후보에게 패한 민주당의 스티븐 더글러스 후보라고 전해진다. 그 이전의 정치인들은 유세 때 신체 접촉 전략을 사용하지 않았다. 박 위원장으로서는 대중과 접촉시 필수적인 스킨십을 최대한 활용할 수 없으니 답답할 것이다. 그러나 붕대를 감은 손이 동정론을 유발하는 효과도 있을 듯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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