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선기 목사의 생활신앙(6)]타종교에 대한 자세 | ||||||
방선기 목사(직장사역연합 대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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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 대상 아닌 사랑과 기도의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바울은 아덴에서 우상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이 일어났다(행 17:16). 믿음 있는 사람의 당연한 영적 반응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비방하거나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종교성이 많다고 인정해주었고(22절) 시인의 글까지 인용하면서(28절)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전했다. 바울이 했던 아덴 전도를 보고 우상숭배를 인정했다고 비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우상 종교를 진리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비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복음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하여 칭찬하면서 하나님을 전하는 계기로 삼았다. 세상에서 아무리 도덕적 삶을 살아도 구원을 받지는 못한다. 그렇더라도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마찬가지이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 종교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종교가 미치는 긍정적인 면은 인정해 주어야 신앙인의 아량을 보여줄 수 있다. 그렇다고 종교다원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타종교에 무례하지 말자는 것을 종교다원주의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을 얻을 길이 없다. 그것은 주님도 강조하셨고(요 14:6) 사도들도 확신했다(행 4:12). 인생이 가진 문제의 핵심은 죄와 죽음이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세상에 있는 많은 종교들은 죄와 죽음을 중요한 문제로 생각지 않거나 혹 문제로 삼지만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종교적인 노력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문제는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길이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다시 사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다. 복음만이 인간의 죄와 죽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타종교는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타종교에는 구원이 없다. 이런 구원의 배타성을 부인하는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나눌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타 종교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종교가 범하는 실수에 대해서 굳이 나서서 비방할 필요도 없다. 오늘 한국 기독교 안에서 작은 실수라도 하면 세상 사람들이 비방을 한다. 크리스천으로서 그런 비방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다른 종교의 실수에 대해서 비방하면 그들도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라는 말씀대로 한다면 당연히 다른 종교를 비방해서는 안 될 것이다(마 7:12).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마 5:44). 그런데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미워한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역사를 돌아보면 종교적 갈등 때문에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 전쟁까지 일어났다. 현재의 지구상 분쟁도 종교 간의 갈등이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런 갈등의 시작은 믿음이 동기가 되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기독교 신앙과는 반대되는 결과가 나타나고 말았다. 그 신앙을 참된 신앙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원수로 생각해 미워했다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에도 위배된다는, 타종교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신학적 전제를 유념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대로 한다면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어야 마땅하다. 물론 주님도 복음이 들어가면 가정 안에서도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눅 12:53). 타종교가 영적으로는 복음과 하나 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영적 갈등이 생기는 것 자체를 미봉하거나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영적인 갈등을 비방이나 폭력과 같은 세속적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을 기뻐하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명심해야 한다. 다른 종교를 비방하거나 공격해서 그 종교에 속한 사람들이 복음을 깨닫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하자. 오히려 다른 종교를 인정해줌으로 기독교의 사랑을 보여주고 그래서 복음에 대해서 관심을 갖도록 이끄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되어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했던 사도 바울의 선교 원리이기도 하다(고전 9:22). 언젠가 이슬람 지역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모슬렘들은 우리가 미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해야할 대상입니다.”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우리가 타종교인에 대해 가지는 우리의 자세를 정립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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