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선기 목사

[방선기 목사의 생활신앙(8)] 이원론에 대해서

꿈 꾸는 소년 2013. 9. 9. 05:10

[방선기 목사의 생활신앙(8)] 이원론에 대해서
방선기 목사(직장사역연합 대표)
2010년 05월 28일 (금) 18:29:23 기독신문 ekd@kidok.com

 
‘주의 일’은 교회에만 한정되지 않아

일상의 삶 영역서 크리스천이 해야할 모든 일이다


   
  ▲ 방선기 목사  
정년퇴직한 한 성도님이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세상 일’은 그만 두었으니 ‘주의 일’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은퇴 후 인생의 마지막을 보람되게 보내고 싶은 성도의 경건한 결단이라고 할 수 있으나 무엇인가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그의 말을 신학적으로 분석해보면 문제가 있다. 일단 그는 ‘세상 일’은 부정적으로 여겼고 ‘주의 일’은 긍정적으로 여겼다. 여기서 그가 부정적으로 혹은 열등하게 본 ‘세상 일’은 무엇이며, 그가 기꺼이 하려는 ‘주의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일 그가 많은 크리스천들이 생각하듯이 지금까지 해왔던 직장 일을 ‘세상 일’로 생각하고 앞으로 하고 싶은 교회 봉사나 활동을 ‘주의 일’로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다면 그 성도의 말에는 성경적 신학이 아닌 이원론이 담겨 있다.

찬송가 450장에서도 이런 비교를 볼 수 있다.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꿈 같이 헛된 ‘세상 일’ 취할 것 무어냐 이 수고 암만하여도 헛된 것뿐일세.” 여기서 만약 ‘주의 일’이 평생 헌신할 교회 일이며 ‘세상 일’은 하지 않아도 좋았거나 헛된 직업으로 이해한다면 이 찬송을 부르면서 얻는 감동은 매우 위험하다. ‘주의 일’과 ‘세상 일’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주의 일’에 대해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의미를 보여준다(시 66:3, 합 3:2, 렘 51:10, 시 64:9, 전 11:5 등). 신약에도 다소 차이가 있는 단어들이 등장하지만(고전 7:32~34, 롬 14:20), 고전 15:58이 오늘날 성도들이 사용하는 ‘주의 일’이라는 말에 가장 근접해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주의 일’은 어떤 일인가?

찰스 핫지는 “주님께서 관계하신 일”이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모와 자녀로서 남편과 아내로서, 사역자와 그리스도인으로서 실행하도록 분부하신 일을 의미한다”고 했다. 교회와 관련된 일만이 아니라 성도의 일상생활 속 복합적 관계와 연관된 모든 책임을 언급한 것이다.

고든 피는 이 구절의 의미를 한 사람이 크리스천으로서 불신자나 신자들을 향해 하는 모든 일, 혹은 뒤에 따라오는 ‘수고’라는 단어와 함께 ‘복음 사역’을 의미한다고 했다. 앵커 바이블에서도 바울의 ‘주의 일’에 대하여 “아마도 바울이 주의 일을 크리스천이 하는 모든 수고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보아 교회 일의 영역을 벗어난다고 했다.

렌스키는 이것이 복음의 일이며, 우리 모두에게 맡겨진 교회의 사명이라고 했다. 단 ‘교회 봉사’와 혼동하지 말고 복음 전파와 관련된 보다 근본적인 일이라고 했다.

이런 주석들을 참고해서 바울의 ‘주의 일’의 의미를 살펴보면 ‘주의 일’은 좁은 의미로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 해석되지만 그 일로만 제한되지는 않는다. 크리스천들이 일상의 삶의 영역에서 해야 할 모든 일을 포함한다. 세속 사회의 직장에서 하는 일도 ‘주의 일’ 안에 포함된다. ‘주의 일’은 ‘교회적인 활동’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적인 활동도 그리스도와 관련되지 않는 일이라면 주의 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바울이 말한 ‘주의 일’에는 자신이 천막을 만드는 일과 같은 육체노동이 포함되었을까?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육체적으로 하는 일의 가치에 대해 강조했다.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살전 2:9).“…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살후 3:8). 바울이 일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경제적인 필요 때문이지만 이차적으로는 성도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 함이었다. 바울이 그 일들을 직접적으로 ‘주의 일’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 일을 ‘헛된 세상 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데살로니가교회에서 일하지 않는 성도들을 향해 일을 하라고 권면도 하고 나중에는 책망까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 4:11~12).“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살후 3:10).

바울 당시의 헬라 철학자들은 경제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귀족들의 후원을 받거나 여의치 않으면 일종의 길거리 특강을 할지언정 육체적 노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런 통념을 깨고 랍비로서 바울은 육체노동을 하여 천막을 만드는 직업을 가졌던 것이다.

한 성도의 고백과 찬송가 가사를 사도 바울의 입장과 비교해보면 지금까지 우리들은 ‘주의 일’과 ‘세상 일’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이 이원론에서 벗어나는 일이 일상생활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우리 크리스천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