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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김진애] 고상함이 무너질 때

꿈 꾸는 소년 2014. 12. 12. 05:23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김진애] 고상함이 무너질 때

입력 2014-12-08 02:20
[살며 사랑하며-김진애] 고상함이 무너질 때 기사의 사진
거부감이 드는 형용사가 있다. 그중 하나가 ‘고상하다’이다. 품위 있다, 기품 있다는 표현이라지만, ‘귀족’이라는 어원에서 나왔으니 귀족이 없어진 세상에서 여전히 귀족적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특권적 심리가 나타나 있다. ‘고상한 말씨, 취미, 스타일’ 같은 표현에서 드러나듯 격식과 형식에 구애받는 것도 못마땅하다.

‘고상하다’는 찬사를 바라는 사람들의 공통된 외형은 뭘까. 헤어드레서가 막 다듬어준 머리, 젊어 보이는 화장, 고급 브랜드가 분명하거나 고급 원단으로 맞춰 입은 게 분명한 의상, 은은한 향수, 만면의 미소가 그들을 둘러싼다. 여자건 남자건 마찬가지다.

그들은 물적 자원을 동원해 ‘고상하다’는 형식을 표현하려 들고, 심리적으로 ‘고상하다’는 찬사를 갈구한다. 그러한 자신이 속빈 강정, 빛 좋은 개살구로 보이는지, 자신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지 잘 모른다. 그들에게서 ‘허영’의 일단을 본다. 오직 사진 찍히려는 모습이다. 그런데 언제나 판에 박힌 모습이다. 격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모습, 그만큼의 수준을 과시하려는 허세가 역력하다. 그들은 ‘고상한 척’할 뿐이다.

고상하게 보이려는 그들에게서 ‘공포’의 일단을 본다. 혹시나 그 자리에서 떨어져 나올까 봐, 고상함을 받쳐주는 권력과 금력을 잃을까 봐, 사람들이 자신의 무능을 알아챌까 봐, 사람들에게 자신의 불행을 들킬까 봐, 자신 속의 텅 빈 자아를 들킬까 봐 전전긍긍이다.

고상하게 굴려는 그들에게서 ‘위선’의 일단을 본다. 철저하게 관리하는 외형 속에 숨어있는 무능과 무책임과 특권의식과 자만심과 무딘 정의감과 부정부패에 안주하는 모습이 드러날 때마다 그들은 그동안 그 위선에 속았던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고상한 외형에 속지 말자. 그 속에 담긴 허영과 공포와 위선이 그 사람을 불행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까지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고상하다는 표현에 숨은 특권의 심리학을 파악하자. 고상하다는 말 대신에 우리가 진정 찾아야 할 가치 있는 말을 찾아보자. ‘정의롭다, 공평하다, 내공 있다, 매력 있다, 개성 있다, 이야기를 듣고 싶다, 토론하고 싶다, 같이 일하고 싶다, 같이 울고 싶다’ 등 당신에게 가치 있는 형용사는 무엇인가.

김진애(도시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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