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칼럼

[시론]애국가 완창이 애국의 척도 될 수 있을까

꿈 꾸는 소년 2015. 9. 1. 11:05



[시론]애국가 완창이 애국의 척도 될 수 있을까

별 싱거운 게 다 궁금할 때가 있다. 아담과 이브에게는 배꼽이 있었을까? 인체의 생물학적 기능으로 따진다면 아담과 이브의 배꼽은 없어야 맞다. 양수에 싸인 태아는 탯줄을 통해 양분을 공급받다 세상의 빛을 본 후 탯줄을 자르는데 탯줄 아문 자국이 배꼽이라면, 조물주가 흙으로 빚은 아담과 한 가닥 갈비뼈로 빚은 이브에게 배꼽이 있다는 건 모순이다. 그들은 엄마의 자궁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조물주의 손과 숨결로 생명을 얻은 태초의 인류이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5년여에 걸쳐 완성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연작 가운데 정중앙에 배치된 ‘아담의 창조’에 등장한 아담에게는 배꼽이 있다. 신과 인간에 대한 새삼스러운 궁금증으로 아담의 배꼽이 논란거리가 됐던 르네상스 시대에 미켈란젤로는 기독교적 해석을 넘어 상식적 종교의 입장에 섰다. 구약성서의 창조설화에 개의치 않고 아담에게 배꼽을 그려 넣었다. 종교적 관념으로 형상화된 밋밋한 존재가 아닌, 배꼽이 옴파로스인 청년 아담이 더 아름답다고 믿었다.

기독교적 상식에서 없어야 할 것은 아담의 배꼽만이 아니다. 바벨탑처럼 위압적인 예배당 위에 마천루를 세우고 그 꼭대기엔 퇴마의 증표로 십자가를 덧댄 후 마무리로 매단 피뢰침은 어떤가? “지은 죄가 두려워 교회 안에서도 벼락을 맞을 것 같으니까 피뢰침을 달았다”고 하면 웃어넘길 교인은 없으리라. 양식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민망하더라도 벼락을 막아줄 피뢰침 다는 걸 마다할 순 없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피뢰침 밑에 쌓아올린 바벨탑과 마천루에 쏟아부은 건축헌금 모금을 위한 협잡이다. 그것은 신도들의 무지와 몰상식에 기댄 종교 지도자들의 농간이기 때문이다.

이성적 비판을 불온시하는 사회의 종교인과 정치 지도자들은 흔히 개인의 탐욕을 하느님 사랑과 나라 사랑으로 호도한다. 이런 경우를 종교적 소양과 민주적 양식이 의심스러운 황교안 총리 후보자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종교적 신념은 특권적 집단 이기주의를 대변해 공무수행에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종교인의 과세에 반대했고, “주일 아닌 적당한 때에 공무원 시험을 실시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편의를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한 행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세력에 의해 샘물교회 신도 2명이 살해됐을 때는 “최고의 선교는 언제나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며 선교의 위험성을 내세워 희생의 불가피성을 언급했다. 그가 정책집행자가 아닌 바에야 그런 발언쯤은 묵과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1개월여 전 ‘신임검사 임관식’에서 법무부 장관으로서 “헌법가치 수호는 나라 사랑에서 출발하고, 나라 사랑의 출발은 애국가이므로… 기본인 애국가를 다 잘 부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단다. 민주주의 국가가 수호하려는 헌법적 가치는 인권이며 구체적 양상은 자유와 평등의 실현으로 구현된다. ‘짐이 곧 국가’라는 발상의 연장선에서 독재자가 권력유지 수단으로 애국가 제창을 강요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게 해 독재자에 대한 충성을 세뇌시켰던 역사가 생생한 마당에, 애국가 완창을 애국의 척도로 강요하다니! 4·19 혁명을 ‘혼란’이라 하고, 5·16 군사 쿠데타를 ‘혁명’이라 한 황교안 총리 후보자야말로 헌법가치를 수호할 자질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아울러 과다 수임료로 지탄을 받은 그가 능력에 따라 수임료를 받았을 뿐인데 왜들 난리냐며 못마땅해할 수도 있겠지만, 과다 수임료가 전관예우라는 특권에 따른 검은 거래임을 그도 모를 리 없다. 그가 염치 있는 크리스천 총리가 되고자 한다면, 예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란,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반갑게 맞이해 주는 인간의 도리를 행하는 것일 뿐,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띠를 두르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나라 사랑은 사랑할 만한 나라를 만드는 데 멸사봉공하는 것이지 애국가를 부르며 사욕을 챙기는 게 아니다.

<류점석 | 비교문학자>

입력 : 2015-06-01 21:15:31수정 : 2015-06-01 21: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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