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생

[광화문에서/신치영]다모클레스의 칼, 그리고 증세

꿈 꾸는 소년 2015. 2. 2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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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3 03:00: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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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신치영]다모클레스의 칼, 그리고 증세

신치영 경제부 차장

얼마 전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올라탄 택시엔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낀 백발의 어르신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서울 지리가 밝지 않은지 몇 차례 가야 할 방향을 물어봤다. 생활비를 대주던 50대 큰아들이 명퇴하는 바람에 두 달 전 76세 나이에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고 했다.

택시 운전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할머니,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 자원봉사자들이 가져오는 무료급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고령자들…. 신문 사회면에 나오는 기사 정도로 넘길 일들이 아니다. 저출산·고령화는 한국 사회에 ‘다모클레스의 칼’이다. 한 올의 말총에 매달려 정수리를 향하고 있는 칼처럼 한국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 된 지 오래다. 먹고살기 힘들어진 청년들이 결혼을 늦추고 출산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2000년 고령화사회가 된 한국은 2017년 고령사회, 2026년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일본이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 초고령사회로 가는 데 각각 24년과 12년이 걸렸다. 한국은 각각 17년, 9년에 불과하다.

게다가 자식들 키우고 가르치는 데 모든 걸 바쳐 온 한국의 노인들은 가난하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가난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노인들도 날로 늘고 있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고령사회가 진행되면서 노동력은 계속 줄어들 것이다.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수는 내년에 3704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하락한다. 부양해야 할 고령층은 늘고, 일해서 돈 버는 사람은 줄어든다면? 일하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부담을 나눠 지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부양하는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지난해에는 17.3명이었는데 이는 2030년엔 38.6명, 2060년엔 80.6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와 양극화가 겹쳐져 복지 수요가 갈수록 급증할 것이다.

우선은 정말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집에서 굶는 아이들이 있는데 부잣집 아이들에게까지 공짜 점심을 주고, 자녀 때문에 직장을 포기하려는 워킹맘과 똑같은 보육 지원을 전업주부에게도 해주고, 매년 연금과 이자소득 수천만 원을 챙기는 퇴직자가 직장에 다니는 아들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내는 게 현실이다. 복지 구조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복지 구조조정만으로 고령화에 대처할 수는 없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11월 ‘장기 재정전망’ 보고서에서 현 수준의 정부 수입과 지출을 유지하면 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 증가 때문에 2033년 국가 파산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가가 국채를 발행해도 재정 적자를 메울 수 없으므로 국민이 세 부담을 나눠 져야 한다는 의미다.

적정한 세 부담 증가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현 세대가 부담하느냐,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미루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증세 없는 복지’를 강변하며 꼼수로 증세를 하려던 연말정산 파동은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었고, 연말정산 파동에 놀라 건보개혁을 미룬 건 비겁한 행동이었다. 고령화를 대비하는 건 국가의 명운이 달린 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이라도 한국의 현실을 적극 국민에게 설명하고 증세가 왜 불가피한지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래 세대에 ‘직무유기 정부’로 기억될 것이다.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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