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못한 유골]광복후 60년간 정부 실태조사 全無… 日은 협조 요청 묵살
일제에 징용된 뒤 러시아 사할린에서 사망한 한국인 묘지. 정부는 올해 말까지 2만 기의 묘지를 파악할 예정이지만 유해는 불과 19위가 봉환됐다. 9월까지 12위가 추가로 봉환될 예정이다. 자료 대일항쟁기위원회
북위 51.51도, 동경 107.51도. 시베리아에 있는 러시아 자치공화국의 하나인 부랴트 공화국 내 모처에 묻힌 사람들의 이름이다.
광복 70주년이 된 오늘도 이들은 일본 이름으로 기록돼 있지만 조선인이다. 이들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중국 동북 지역에 강제 동원됐다 시베리아로 끌려간 1만여 명의 한국인 중 일부다.
‘대일 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자 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대일항쟁기위원회)에 따르면 이처럼 강제 동원됐다 해외에서 사망한 한국인은 43만 명에 이른다.
시베리아의 경우 군인과 군무원 등으로 일본군에 강제 동원됐던 이들이 소련에 포로로 억류됐다. 대부분은 한국과 북한 등으로 귀환했지만 당시 포로의 사망률(약 10%)을 감안할 때 수백 명이 사망해 현지에 묻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인 ‘이와모토 소켄’ 등 7명은 대략적인 매장지 정보라도 있는 사례다. 이들을 포함해 자국인 포로 사망자를 조사하던 일본 후생노동성이 2009년 조선인으로 확인해 한국에 정보를 넘겨준 12명을 빼면 유골의 매장지 정보가 아예 없다. 사망자 명단도 1991년 소련이 일본에 4만 명의 명부를 전달했지만 한국은 받지 못했다.
시베리아에 흩어져 묻힌 사망자의 매장지 확인과 유골 수습은 점점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생환자 모임인 ‘시베리아 삭풍회’ 회원들이 잇따라 타계해 매장지 확인이 어려워지고, 이들 지역이 급속히 산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일본은 지난해 시베리아에 억류됐다 귀환한 일본인 포로들에 관한 기록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했다. 대일항쟁기위원회는 “강제 동원됐던 한국인 희생자들은 묻힌 곳도 모르는데 일본은 역사의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둔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태평양 지역의 유골 봉환도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태평양 지역 유해를 발굴해 화장한 뒤 도쿄 무명 전몰자 묘역에 봉안하는 과정에서 한국인과 중국인 등도 포함됐기 때문에 이를 가려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뒤늦게 한국인 유족들이 발굴에 참여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태평양전쟁피해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에 따르면 지난해 미군기지가 있는 마셜 제도 콰절린 섬에서 태풍으로 일본군 유해가 드러났지만 일본 측은 한국인이 포함됐는지에 대한 확인을 거부했다. 한국인 유족들의 DNA 검사 요청을 거절하면서 “한국인이 포함돼 있다면 아예 수습하지 않고, 현지에 그대로 두겠다”는 황당한 답변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몽골, 시베리아로 유해 조사 대상지를 확대하는 등 자국민 유골 발굴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면서도 한국의 공동 조사 요구는 묵살하고 있다. 2012년 대일항쟁기위원회가 이오(硫黃) 섬 유해 발굴과 조사 과정에 참여할 것을 요청했으나 일본 측의 묵묵부답으로 무산됐다.
이처럼 해외 유골 봉환이 걸음마 단계에 머무르는 것은 한국 정부의 의지 부족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04년 대일항쟁기위원회의 출범 전에는 광복 60년이 가깝도록 우리 정부가 해외 유골 실태 조사를 한 적이 없다.
정부가 일본 과거사 문제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할 뿐 유골 봉환 등은 ‘관심 밖’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참여정부 시절 합의된 일본 내 한국인 노무 동원자 유골 봉환이 그 예다. 2010년 중 1차 봉환 실시에 양국 정부의 의견이 접근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악영향을 끼쳐 봉환이 무산됐고, 아직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김민철 보추협 집행위원장은 “보추협이 ‘유해 발굴에 한국 유족이 참여해야 한다’고 일본 정부에 촉구하면 ‘한국 정부에 물어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며 “그러나 우리 정부는 ‘열심히 하겠다’는 하나마나한 말뿐 일본 정부와 구체적 협상을 진전시키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은 전쟁포로·실종자 합동확인사령부(JPAC)를 구성하고 연간 1억4000만∼1억5000만 달러의 예산과 전문 인력 450명을 투입하고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광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친 戰死기록 1997년에야 찾아… 유골이라도 모셔와야 恨 풀릴 것” (0) | 2015.08.12 |
---|---|
[돌아오지 못한 유골]6·25 전사자 4만명 유골도 北서 못 돌아와 (0) | 2015.08.12 |
42만 징용자 넋은 돌아오고 싶다 (0) | 2015.08.12 |
[광복 70년/숫자로 본 대한민국 어제와 오늘]<3>날개단 주식시장 (0) | 2015.08.12 |
[광복 70년/숫자로 본 대한민국 어제와 오늘]<2>눈부신 경제 발전 (0) | 2015.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