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2:7~15>
□ 왜 성경은 인간의 실수를 기록하고 있는가?
성경에는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고 존경하는 인물들의 실수와 허물이 너무나 赤裸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대에 가장 완벽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했던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고 누워 醜態를 보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두 번이나 자기 아내를 누이라 거짓말을 했던 사건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가 며느리인 다말과 동침하여 아들을 낳은 사건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며 떠났던 사건도 가감 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사람들의 범죄와 실수와 허물을 거룩한 성경에 그대로 기록해 두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는 인생임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 입니다. 둘째로, 다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한 번의 넘어짐도 없이 완전하고도 완벽한 삶을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늘 연약한 내 자신을 보며 좌절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실패와 넘어짐이 있었기에 우리는 위로를 얻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도젖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나단 선지자의 책망
다윗이 이렇게 간음죄와 살인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 다윗을 책망하셨습니다. 다윗을 찾아온 나단 선지자는 한 비유를 들어 다윗을 책망하였습니다. 한 성읍에 양과 소가 많은 부자와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행인이 이 부자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이 부자는 자기의 소와 양을 놔두고 가난한 사람의 집에 있는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 집에 온 사람을 대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노를 발하며 나단 선지자에게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은 부자의 행위에 대하여 분노하며 마땅히 죽을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4배나 갚아 주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삼하12:5b~6) 그런데 이 모습이 다윗의 모습만이 아니라 사실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얼마나 쉽게 판단하고 또 많이 정죄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에는 익숙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남을 판단하므로 내가 내 자신을 정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롬2:1)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책망을 받으면서도 그 부자가 바로 자신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12:7절a) 나단 선지자는 절대 권력을 가진 왕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며 그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 하나님을 업신여기지 말라.
그러면 다윗이 이런 죄를 짓게 된 범죄의 動機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이 왜 이런 죄를 지었을까요? 하나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삼하12:9절a) 네가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간음죄와 살인죄를 지은 것은 곧 하나님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삼하 12:10절에서는 "나를 업신여겼다"고 했습니다. 업신여겼다는 말의 뜻은 "蔑視하다","가볍게 생각하다"라는 뜻입니다. 왜 다윗이 이런 간음죄와 살인죄를 지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길까요? 하나님의 심판이 즉각적으로 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를 지을 때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 즉각 임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그 죄에 대하여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하나님은 곧바로 징계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회개의 기회를 주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仁慈하심, 오래 참으심을 하나님의 무능 혹은 무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報應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그 죄를 지적하시고 책망하신 다음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셨습니다.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12:10)고 말씀하셨습니다. 칼이 네 집에 떠나지 않는다는 말은 죽음이 항상 그 가문에 떠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대로 간음에 태어난 아들이 죽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다말을 강간한 암논을 殺害하였습니다. 다음은 아내를 빼앗기게 될 것이고 그들이 白晝에 다윗의 아내들과 동침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삼하12:11)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예루살렘 성을 차지하였을 때 옥상에서 그것도 백주에 아버지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을 하였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다윗이 지은 죄에 대하여 이렇게 정확하게 심판하셨습니다. 勿論 우리 하나님은 다윗이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하며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할 때 즉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죄 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삼하12:13절b) 이것을 보면 다윗을 회개를 통하여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은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이루어졌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의 죄에 대하여 분명히 사함을 얻으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지은 죄에 대하여 징계를 하셨을까요? 이것은 다윗의 범죄가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기 때문입니다.(삼하12:14) 다윗의 범죄가 원수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비방할 거리를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범죄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이 失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의 범죄는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毁損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公義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분은 구약의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냐 구약의 하나님이 신약의 하나님이시고 신약의 하나님이 구약의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이 더 강조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왜 구약에서는 공의의 하나님이 더 강조되고 있을까요? 아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건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죗값을 完璧하게 치르셨습니다. 그 죄의 결과까지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진정으로 회개하여 그 죄에서 돌이키면 죄 사함을 얻습니다. 그 죄의 결과로부터도 자유함을 얻습니다. 그러나 값없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하는 자에게는 그 지은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징계하십니다. 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저하여 죄를 미워하며 죄와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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