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2] 2008.

상한 心靈으로 드리는 예배 김은호 목사

꿈 꾸는 소년 2016. 5. 7. 16:47

<시 51:16~17>

 

 □ 禮拜의 사람

 

 다윗은 예배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아들 압살롬의 叛亂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있을 때에도 그는 오직 한 가지 일 곧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예배드리는 것을 思慕하며 懇救하였습니다.(시27:4) 지금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로 인하여 피난을 가 있는 상태입니다. 백승들도 이제는 다윗의 시대는 끝이 났다며 아들 압살롬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지금 무엇을 간절히 구해야 할까요? 반란군을 몰아내고 잃어버린 왕권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위하여, 그리고 자신을 떠난 민심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다윗은 반란군의 패배를 위하여, 왕권의 회복을 위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다시 자신을 향할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배가 회복되면 모든 것이 회복될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백성들과의 관계도 회복될 수 있고 예배가 회복되면 잃어버린 왕권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은 예배의 사람이었습니다. 

 

 □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배의 사람 다윗이 "주께서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16절) 성전하면 제사가 떠오르고 제사하면 하나님과의 만남이 떠오르는 시대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정욕에 목말라 하던 사마리아 여인이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달라 할 때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예배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솔로몬이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를 얻게 되었고 구하지 아니한 富貴와 榮華까지 누리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천 번제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예배를 받으시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예배 가운데 거하시고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지만,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이 드린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창4:4절b~5절a)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이 받지 아니하는 제사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하나님께 제사를 빠짐없이 들렸습니다. 무수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나아와 얼굴만 보이고, 제물만 드리면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이것은 제사가 아니라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1:12)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왜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까? 예배할 마음은 없고 여호와의 제단 마당만 밟고 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그러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어떤 제사일까요?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17절a)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러면 상한 심령이라? 17절 하반절에 보면 상한 심령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하고 痛悔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그 마음이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상한 심령은 자신의 죄와 罪性으로 인하여 상처를 입은 심령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림으로 빛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자신의 죄와 죄성을 인하여 절망하며 嘆息할 수 밖에 없습니다.  

 

 □ 상한 심령으로 나아간 세리

 

 성경을 보면 상한 심령, 상처입은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稅吏입니다. 눅18장을 보면 어느 날 바리새인과 세리가 함께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머저 바리새인이 따로 서서 기도했습니다. 왜 바리새인이 따로 서서 기도했습니까? 죄인 중의 죄인인 세리와 함께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기 서 있는 세리와 같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지금 자신의 의와 업적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리는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자신의 가슴을 내리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 중 누가 상한 심령이 소유자입니까? 누가 상처입은 심령입니까? 세리입니다.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그 죄로 인하여 마음 아파했던 세리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자신의 의를 가지고 나아갔던 바리새인이 아니라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고백했던 세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눅18:14절a)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상한 심령입니다. 왜냐하면, 상한 심령은 가진자에게만 복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왜 상한 심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첫째, 상한 심령의 사람을 주께서 蔑視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누군가 죄에 넙어지면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그 사람을 定罪합니다. 자신 안에도 그런 軟弱한 죄성을 가지고 있지만, 너무나 쉽게 그 사람을 판단하고 멸시합니다. 심지어는 피켓을 들고 나아가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17절b) 

  

 둘째,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지었지만 무너지거나 망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讖悔를 통하여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마5:3) 여기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누구입니까?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구원을 받을 수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천국을 약속한 사람은 선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맛볼 수 있는 자는 자신의 죄로 인하여 심령이 상한 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