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2] 2008.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제28권 19호 2016.5.8./김은호 목사

꿈 꾸는 소년 2016. 5. 11. 03:57

<삼하 18:33>

 

 □ 부모와 자식 관계는 天倫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천륜이라고 말합니다. 천륜이란 하늘이 맺어준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하나님이 맺어준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맺어준 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나를 나은 부모가 배우지 못했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또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부모 됨을 부정하고 부모와의 인연을 끊으려는 자드리 있습니다. 또 부모들 가운데도 내가 낳은 자식 가운데도 미운 짓만 골라하고 속을 너무나 많이 썩인다는 이유로 "너는 내 자식이 아니야"라며 자식과의 인연을 끊으려는 분들이 있습니다.그러나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천륜으로 끊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 번 부모는 영원한 부모이고 한 번 자식은 영원한 자식인 것입니다. 본문은 한 번 부모는 영원한 부모이고 한 번 자식은 영원한 자식인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아들 압살롬

 

 다윗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셋째 아들이 바로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은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흠이 없을 정도로 외모가 뛰어난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의 마음에 가장 많은 아픔과 상처를 주었고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한 아들이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장남이 암논을 살해하여 아버지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반역을 꾀하기 위해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마음도 도적질하였습니다.(삼하 15:6) 그리고 반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죽이고 왕이 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때 다윗의 왕은 후궁 열 명 만을 궁에 남겨두고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울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첫째, 자존심을 내려놓다.

 아들 압살롬이 반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 궁 안으로 쳐들어왔을 때 다윗은 반란군과 싸우지 않고 피난길에 나섰습니다. 왜 다윗은 반란군과 싸우지 않고 그냥 도망을 갔을까요? 힘이 없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나중에 다윗의 군대가 반란군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면 힘이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다윗이 싸우지 않고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울면서 예루살렘을 떠난 것은 아들 압살롬 때문입니다. 자식과의 싸움에서 피를 보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이 싸움이 적군과의 싸움이 아니라 아군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다윗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왕으로서 자존심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불릴 정도로 싸움에 능한 다윗이지만 아들의 피를 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위하여 왕으로서의 자존심, 이스라엘의 용사로서의 자존심을 다 내려 놓은 것입니다. 아버지 다윗은 아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싸우는 것보다 지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 다윗의 마음이었습니다.

 

 둘째, 선처를 부탁하다.

 猝地에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하여 쫓겨난 다윗은 자기를 중심으로 모인 백성들을 모아 군대를 조직하여 전투에 내어 보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의 군대와 싸우기 위하여 나아가는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 장군을 붙들고 모든 군사들의 귀에 들리도록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니 대우하라"(삼하 18:5)라고 했습니다. "너그러이 대우하라"는 말은 다치지 말고 부드럽게 대우하라는 것입니다. 압살롬과 싸우면서 압살롬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부탁한 것입니다. 아들 압살롬에 대한 선처를 간곡히 명령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 다윗의 마음이었습니다.

 

 셋째, 安否를 묻다.

 그날의 전쟁을 몹시 熾烈하였습니다. 얼마나 전투가 치열하였든지 그 날에 죽은 전사자만 無慮 2만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그 전쟁에서 압살롭은 아간보다 더 悲慘하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성문 사이에 안장 초조하게 전쟁의 소식을 기다리던 다윗은 전쟁의 소식을 가지고 달려오는 두 전령에게 승리의 소식에 기뻐하기보다 가장 먼저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다윗은 전쟁의 승패보다 아들 압살롬에게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아비 된 다윗의 마음이고 부모의 아음입니다.

 

 넷째, 마음이 심히 아파 울다.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울었습니다.(삼하 18:33절a) "마음이 심히 아파"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라가즈`인데 `떨다, 戰慄하다`의 뜻입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장이 전류에 감전도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왕의 체면도 버리고 비틀거리며 성문 골방으로 올라가 대성통곡하며 울었다. 그런데 어떻게 울었습니까?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이라며 울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입니다. 아버지를 拒逆하고 아버지를 죽이려고까지 했던 아들이었기에 저주를 받아 죽어야 마땅하지만, 오히려 다윗은 자기가 대신 죽었더면" 이라며 울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는 언제나 자신보다 자식을 더 사랑합니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이 자신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보모는 언제나 자신은 못 먹고 못 입고 못 살아도 자식만큼은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이 자신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고, 자존심도 내려놓을 수 있고,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우리의 부모님 이십니다. 아무리 자식이 망나니 같아도 자식이 같아도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고 건강하기를 바라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끝까지 자식의 허물을 감추어 주고 싶은 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입니다.그런데 우리는 이런 부모의 마음을 잘 모릅니다. 

 

 □ 내 아들아! 내아들아!

 

 傳令을 통하여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성문에 있는 골바응로 올라가 대성통곡하며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를 최치며 통곡하였습니다. 33절에 보면 무려 내 아들이라는 말이 5번이나 나옵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들은 다음 "내 아들아!"를 무려 다섯 번이나 외치며 통곡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절대로 끊어질래야 끊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있어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의 은혜를 배신한 자였습니다. 심지어는 왕의 정통성이 자기에게 있다는 사실을 誇示하기 위해 백주에 옥상에서 아버지의 후궁들을 욕보인 破廉恥한 자식이었습니다. 아니 정권을 잡으려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極惡無道한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런 아들 압살롬을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이라고 부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래도 "내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