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7:15~25>
□ 갈등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갈등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갈등이 없는 시대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보면 얼마나 갈등이 많습니까? 우리 대한민국은 갈등의 공화국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많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노사간의 갈등, 세대간의 갈등, 지역간의 갈등, 빈주 갈등에 이어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념간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갈등은 사회만이 아니라 작게는 우리의 가정에도 많은 갈등들이 있습니다. 종교적인 갈등, 고부간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 심지어는 애완견으로 인한 갈등까지 참 많은 갈등들이 있습니다. 갈등은 세상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애굽에 내려 갔을 때 사람들이 아내에 대하여 물으면 어떻게 말할까? 솔직하게 "내 아내라고 말할까?" 아니면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나의 누이라 말할까?"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사울을 택하여 왕이 될 것인가? 아니면 우정을 택하여 다윗을 보호해 줄것인가? 하지만 요나단은 우정을 택하여 다윗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 응답에 대한 갈등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자신의 신앙이 자라지 않음에 갈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필연적인 갈등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 안에 있는 내면적인 갈등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와의 투쟁에 대한 갈등입니다.
□ 사도 바울의 갈등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에게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것들에 대한 내면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었던 내면의 갈등은 무엇입니까? "원하는 선은 행치 않고 도리어 미워하는 악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15절,19절) 사도 바울은 선하게 살고 의롭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원하는 것은 하지아니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죄를 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심히 괴로워하였습니다. 바울은 자기 안에 있는 이런 모습을 발견하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영적 갈등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 사도 바울의 깨달음
1. 내 안에 선악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라"(21절)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이 말의 의미는 '내가 한 가지 법칙이나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내 안에 선과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옛 사람의 성품을 가진 죄의 법과 새 사람의 성품을 가진 하나님의 법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왜 내 안에 두 개의 법이 존재하여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생명과 예수를 믿음으로 갖게된 새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이 육신의 생명은 아담으로부터 흘러오는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所欲을 따라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음으로 갖게 된 새생명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있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마음과 악을 행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죄의 법과 하나님의 법이 있는 것입니다.
2. 선과 악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법과 하나님의 법 이 두 가지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22~23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옛 생명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새생명을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두 본성이 우리 안에서 서로 대적하여 싸웁니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이 가장 치열하게 이루어지는 현장이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생각입니다.
3. 선과 악의 전쟁에서 악이 승리한다.
바울은 죄를 짓고 싶어하는 육신의 소욕 곧 죄의 법이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마음의 법을 사로 잡을 오는 것을 보았다.(23절) 내 안에 육체의 본성이 얼마나 강하든지 내 안에 있는 마음의 법과 싸워 자신을 그 죄의 법 아래로 끌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죄와 투쟁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언제나 죄의 법이 마음의 법을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죄와 투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사도 바울의 탄식
"오호라 나는 困苦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 여기서 "곤고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탈라이포로스'인데 이 말은 전쟁에서 패배하여적의포로가 된 기진맥진한 병사의 모습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망의 몸"은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살리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없이 생명과 성령의 능력이 없이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율법을 지키려 하는 자는 결국 죄의 포로가 되어 기진맥진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살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호라 나는 困苦한 사람이로다"라고 외치고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며 탄식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죄로 인한 갈등과 나의 연약함에 대한 탄식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갈등과 탄식을 경험자가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있고 복음의 권세와 능력을 경험할 수 있고 복음의 감격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사도 바울의 감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25절a) 죄로 인하여 그토록 갈등하고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탄식하던 바울이 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합니까? 그것은 바로 이 죄로 인한 갈등과 절망과 탄식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내 안에 있는 죄성과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우리가 모든 죄성과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내 모든 죄 값을 완벽하게 지불하셨고 또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셔서 그 성령의 능력으로 죄의 본성과 죄의 권세로부터 승리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죄로 인한 갈등과 나의 연약함에 대한 절망과 탄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갈등과 눈물과 탄식은 구원의 수단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갈등과 탄식의 자리에서 주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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