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18~23>
□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상속자, 그것도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가 되었습니다.(롬8:17절a)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로부터 받아 누리게 될 그 영광과 축복을 우리도 함께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로 받아 누릴 영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땅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는 것이고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모든 죄성이 사라지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육체가 부활하여 주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과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로서 받아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기업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런 놀라운 영광을 받아 누리게 될 상속자는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롬8:17절b)
□ 비교될 수 없는 榮光
그런데 苦難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고난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자청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고난이라면, 주님 때문에 당해야 하는 고난이라면 피하지는 마십시오. 왜냐하면,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8:18) 여기서 바울은 고난을 "현재의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현재의 고난이란 기간으로 보면 하나님으 사람으로 거듭나서 그 영혼이 육체의 장막을 벗는 순간까지의 고난을 말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고난이란 그 고난이 실재적인 고난임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현재의 고난이란 실제로 아픔을 당하고 실제로 손해를 보고 실제로 고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난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낙망하지 마십시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당할 때마다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받아 누리게 될 그 영광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울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수 없이 매를 맞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할 때마다 현재의 고난과 장차 받아 누리게 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비교해보니 지금의 고난은 나타날 영광과 비교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바울처럼 고난을 당할 때마다 현재 내가 당하고 있는 고난과 장차 주님이 내게 주셔서 누리게 될 그 고난을 이겨 내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영광을 비교할 때에 우리는 현재의 고난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 피조물이 고대하는 것 :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
지금까지 상속자로서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이 누릴 영광에 대하여 얘기하던 사도 바울은 이제 눈을 들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이 간절히 고대하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롬8:19) 그러면 모든 피조물들이 그렇게도 간절히 고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그토록 고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 위해서입니다.(21절)
□ 왜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에 자유에 이르기를 원하는가?
첫째, 모든 피조물이 虛無한데 굴복당하여 있기 때문이다.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20절) 우리 인간이 타락할 때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을 당하였습니다.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게 되었다는 것은 피조물이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의 원리와 질서와 목적대로 존재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식물은 인간에게 해가 되고 독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동물은 사람을 해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의 세계에는 겉으로는 보는 것과는 달리 무서운 생존의 싸움과 약육강식이 행하여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당하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인 인간이 타락할 때 인간만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도 함께 저주를 받았습니다.(창3:17~18) 그래서 22절을 보면 피조물이 주님이 재림하시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모든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합니다. 왜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둘째,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21절) 인간이 범죄 함으로 죄와 사망의 법 아래 매임을 당한 것처럼 피조물도 쇠퇴하고 썩는 자연의 법칙에 속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면 허무한데 굴복당하 모든 피조물이 자유함을 얻고 썩어짐에 종노릇하던 모든 피조물이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우리 안에 있는 타락한 죄성이 사라지고 주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래 창조의 목적대로 우리 주님과 함께 모든 피조물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 종인가? 아들인가?
이렇게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재림의 날에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고 다스리게 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영화와 존귀의 관을 쓰고 모든 세세토록 왕 노릇 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날에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의 다스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는 죄 없는 천사도 우리를 수종들며 우리 앞에 굴복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아들이 아닌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분은 결코 종이 아니라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종이 아닌 아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종으로 사는 것과 아들로 사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종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종을 버림을 받을 수도 있지만, 아들은 버림을 당치 않습니다. 종은 죽었다 깨어나도 상속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상속을 받습니다.(갈4:7) 종은 늘 자신이 해야 할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아들은 일보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종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야 합니다. 가진 것이 없고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열악한 환경 속에 살고 있어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존감을 당당학 살아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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