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15>
□ 에덴을 耕作하라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아담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안으로 이끌어 거기 두셨습니까? 에덴동산을 경작하여 지키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아담을 두어 그 땅을 경작하게 하셨습니다. 경작이 뭡니까? 땅을 갈아서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각종 과일나무의 열매만 먹고 살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도록 하셨습니다. 농사를 지어 所出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에덴동산 낙원하면 일할 필요도 없고 빈둥빈둥 놀고 먹고사는 세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도록 하셨습니다.
□ 에덴동산을 회복하라
그러므로 에덴동산을 회복한다는 것은 에덴을 경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경작하는 것이, 어떻게 일을 행하는 것이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삶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 노동을 신성하게 여기는 것.
예로부터 사람들은 노동을 천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노동은 죄로 인하여 주어진 형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동은 인간의 타락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에 아담에게 그 땅을 경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은 형벌이 아닙니다. 노동은 신성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을 행하는 것, 노동을 천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정신적인 노동을 존경하면서도 육체적인 노동은 천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노동은 형벌이 아닙니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은 죄의 결과가 아닙니다. 노동은 인간의 타락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은 신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도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는 일을 행하셨고 우리 예수님 역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2:10)고 말했고 자신 역시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직업 역시 귀천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그 일이 죄를 助長하고 不義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떠 직업도 귀천이 없다. 그러므로 에덴을 회복하는 것은 노동을 신성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삶을 사는 것은 노동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둘째, 즐거움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것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어 그 땅을 경작하게 하셨을 때 불평과 원망과 온갖 짜증을 내면서 땅을 파고 씨를 심고 나무를 심었을까요? 아닙니다. 아담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경작하는 그 일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땅을 征服하여 다스리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땅을 경작하는 그 일이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서 땅을 정복하며 다스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콧노래를 부르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 자체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존의 수단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일이 기쁘고 즐거웠던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수단으로 노동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하여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 노동의 목적이 생존의 수단으로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破棄하고 선악과를 먹었을 때 하나님은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所産을 먹으리라"(창3:17b) 고 말씀하셨고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창3:19a) 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노동의 목적이 생존의 수단으로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노동의 즐거움이 아닌 괴로움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저주대로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수단으로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현실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먹고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일을 행함에 있어 기쁨과 즐거움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수단으로만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이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은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라고 말합니다.(전3:22)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것은 경작하는 것입니다.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아지못해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아담처럼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쁨과 즐거움으로 일을 행하며 사는 것이 바로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것.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다음 아담을 그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거기 두셨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경작하라! 입니다. 땅을 파고 갈아 그 땅에 씨를 뿌리고 나무도 심고 그래서 소출을 내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농사를 지으라는 것입니다.
창2:5절을 보면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 하여금 땅을 갈고 농사를 지어 소출을 얻게 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닌 땅을 정복하고 사스리는 자로서의 사명으로 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에게 일은 사명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의미 있고 거룩한 일이 되려면 그 일에 대한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일만 행한다고 해서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내가 그 일을 해야 하지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알고 있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면서 우리가 일을 행하는 목적 노동을 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0:31절에서 우리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에 대하여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왜 우리가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까?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을 뛰어넘어 하나님이 영광을 위하여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뭘까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는 것"입니다.(골3:23) "무슨 일을 하든지"입니다. 교회에서 행하여지는 일만이 아닙니다. 교회 밖에서 행하여지는 일 역시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제도와 조직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이 움직여야 변화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땅에 사시는 동안 한 번도 노예제도를 폐지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무력으로 로마를 정복하라! 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낮고 천한 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세리와 창기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셨고 안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고 우리의 가정은 더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일을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바로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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