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사무원 / 김기백(1957- )

꿈 꾸는 소년 2017. 1. 26. 11:59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 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상 자기 의자에서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 시간에도 의자에 의자에 단단히 붙박여

보리밥과 김치가 든 도시락으로 공양을 마쳤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 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는 사람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하루종일 손익관리대장경과 자금수지심경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 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에다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산 부실채권 등등을

청하하고 구성지게 염불했다고 한다.

끝없는 수행 정진으로 머리는 점점 빠지고 배는 부플고

오랜 음지의 수행으로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재를 올렸다고 한다.

수행에 너무 지극하게 정진한 나머지 

전화를 걸다가 전화 버튼 대신 계산기를 누루기도 했으며

귀가하다가 지하철 개찰구에 승차권 대신 열쇠를 밀어 넣었다고도 한다.

이미 습관이 모든 행동과 사고를 대신할 만큼

깊은 경지에 들어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30년간의 장좌불립'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리 부르든 말든 그는 전혀 상관치 않고 묵언으로 일관했으며

다만 혹독하다면 혹독할 이 수행을

외부압력에 의해 끝까지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껏 매달릴 수 있나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시주는 채워지기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스며들었으나

혹시 남는지 역시 모자라는지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 풍자적(사회체제를 풍자)

오로지 의자 고행에만 더욱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그의 책상 아래에는 여전히 다리가 여섯이었고

둘은 그의 다리 넷은 의자다리였지만 *향가 '처용가'의 일부 패러디

어느 둘이 그의 다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 너는  (0) 2017.01.27
어처구니 - 이덕규  (0) 2017.01.27
내가 아는 남자 / 이호자(경기도 광주 문화원) - 2016  (0) 2017.01.16
해피 버스데이 - 오탁번  (0) 2015.08.05
행복 - 헬만 헷세  (0) 2015.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