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정동]마시멜로 리더십
끈기 알아보는 마시멜로 실험 보상 약속 안 지켜지거나 불우한 환경에선 안 통해 시행착오 못 버티는 청년들… 기업환경 문제 때문 아닌가 청년의 버티는 힘 키우려면 개인 품성 탓할 것이 아니라 리더의 마인드부터 바뀌어야
이정동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마시멜로 효과로 널리 알려진 재미있는 심리 실험이 있다. 네댓 살 유아를 방에 불러놓고, 접시에 달콤한 마시멜로 하나를 올려놓은 다음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한다. 언제든 먹을 수 있지만 선생님이 나갔다 돌아올 때까지 먹지 않고 기다리면 하나를 더 준다고 약속한다.
선생님이 나가고 나서 아이들의 행동을 촬영한 비디오를 보면 갈등하면서 그 나름대로 끈기를 발휘해 버티려고 애쓰는 모습이 하나같이 귀엽기 짝이 없다. 물론 금방 먹어버리는 아이도 적지 않다. 아이들이 버텨낸 시간을 측정한 다음 추적조사를 해보면 더 끈기 있게 버틴 아이들의 대학입시 성적이 더 좋았다. 끈기가 성공의 열쇠라는 것이 이 실험의 핵심 메시지다.
마시멜로 실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 청년기업가들의 끈기 없음이 마치 문이 닫히자마자 마시멜로를 냉큼 집어먹어버리는 아이들의 행동을 떠올리게 한다. 반대로 아이폰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집요하게 시행착오를 버텨낸 스티브 잡스는 끈기를 발휘해 의연하게 버틴 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시멜로 실험의 후속 실험들을 살펴보면 반전의 포인트가 있다. 예를 들어 참고 버티면 두 개를 주겠다던 선생님이 약속을 어기고 보상을 주지 않으면, 다음 날 똑같은 실험에서 아이들은 대체로 마시멜로를 금방 먹어버린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툼이 많은 불우한 집안의 아이들도 참을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참는답시고 딴짓하다가는 눈앞의 먹거리를 가로채이기 때문이다.
이 후속 실험들은 끈기라는 것이 타고난 품성의 문제라기보다 환경조건의 문제일 수도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잡스의 끈기가 원래부터 타고난 것이라면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지만, 환경조건의 문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끈기를 갖고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환경에서라면 누구라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청년창업가를 포함하여 우리 기업가들은 왜 끈기 있게 시행착오를 버텨내지 못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면서 나는 원래의 마시멜로 실험이 아니라 후속 실험의 교훈을 더 믿게 됐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버텨보려 아등바등하던 선배 기업가들이 보상은커녕 결국 재도전이 불가능한 인생 실패의 나락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례들을 보았다. 경기가 조금만 어려워져도 꾸준히 한 분야를 닦아오던 전문가들부터 먼저 인력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것도 보았다. 이런 환경 아래에서 언젠가는 보상을 받을 터이니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 지내는 자세로 끈기를 좀 가지라고 나무라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 본 것이다. 그들은 아주 합리적으로 끈기가 부족하다.
우리 산업계를 지배하는 리더들의 마인드가 먼저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끈기 있게 버틴 노력의 결과를 제대로 인정해주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도록 조직의 인센티브 체계와 산업계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현재의 리더들에게 있다.
지난봄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하는 선전시를 다녀왔다. 그곳에 있는 한 글로벌 기업에 근무하던 한국 청년의 모습이 지금도 뚜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회사의 제품과 전략을 탁월하게 설명하던 그 자신감을 보면서 한국의 미래가 느껴졌다. 도전을 장려하고 시행착오를 감내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한국 청년들이 얼굴에 빛이 나도록 활약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선전시의 그 청년이나, 노량진의 공시족이나, 빠른 성공을 노리고 창업했다가 이내 포기하고 마는 이들이나 모두 똑같은 한국 청년들이다. 우리 산업계의 리더들이 청년들의 끈기 없음을 탓할 일이 아니라 끈기를 발휘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고 있는지 먼저 주변을 둘러보아야 한다. 그런 뜻에서 마시멜로를 앞에 두고도 버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리더십을 앞으로 마시멜로 리더십이라고 하면 어떨까.
이정동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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