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하준경]집단자살 사회와 재정건전성
한국의 저출산, ‘집단자살’로 불려… IMF 총재가 한탄 대규모 재정지출 불가피하지만 재정건전성 걱정 남은 기간 불과 5년, 젊은이들 마음 돌릴 과감한 투자 필요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그러나 현대 인간사회의 개체수 조절 원리는 동식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동식물 세계에서는 개체수가 줄면 개체당 먹을 것이 늘어나 다시 번식이 활발해진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는 개체수가 줄어 1인당 자원이 많아져도 그것이 출산 당사자인 젊은이들에게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인간사회에는 두꺼운 은퇴자 계층이 있다. 저출산으로 은퇴자 비중이 늘면 젊은이들은 세금, 임차료, 원리금 등을 더 많이 내서 이들을 부양해야 하므로 쓸 수 있는 자원이 줄어 출산이 더 억제된다.
경제학자 로널드 리와 앤드루 메이슨은 가계의 생활수준을 극대화하는 균형출산율은 사회의 규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대체출산율―여성 한 명당 2.1명―보다 훨씬 낮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출산율이 대체출산율로 자동 회복되는 메커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출산율이 대체출산율을 밑돈 지 34년, 1.2 밑으로 떨어진 한국의 출산율은 집단자살의 길에 들어선 지 오래다. 그럼에도 청년들의 양육 부담과 주거 부담 해결을 위한 대규모 재정지출 논의가 나오면 재정건전성 걱정부터 쏟아진다. 하지만 길게 보면 재정건전성의 최대 위협 요인은 바로 저출산이다. 미래의 납세자들이 태어나 주지 않으면 재정 기반 자체가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리와 메이슨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재정건전성을 극대화하는 출산율은 2.07명이지만 가계의 입장에서 최적 출산율은 1.25∼1.55 수준이다. 양자의 괴리가 큰 것은, 출산의 부담은 대부분 개인이 지지만 납세자 수 증가에 따른 이익은 사회가 누리는 ‘사익과 공익의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가정을 꾸릴 때 소요될 엄청난 주거비와 교육비 앞에서 웬만한 결혼·출산 지원책으로는 월평균 158만 원(금융위원회 조사 결과)을 버는 20대 청년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다.
과감한 정책전환 없이는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좋은 일자리가 넘치고 주거비와 양육부담(돈과 시간)이 확 줄면 나아지겠지만 이것이 저절로 해결될 일인가. 장기 재정전망을 걱정할 계제가 아니다. 재정전망은 미래의 출산율과 인구구조 시나리오 가정 위에 이루어지므로 인구전망이 정확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1년 후 출생아 수조차 못 맞힌다. 작년에 올해 출생아 수가 41만3000명일 것으로 예측됐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10% 넘게 줄어든 36만 명 선으로 가고 있다. 일본에선 1982년에 출산율이 1.77로 떨어지자 2010년엔 2.0으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1992년에 출산율이 더 떨어져 1.5가 되자 2010년 전망을 1.8로 수정했다. 그러나 실제 일본의 2010년 출산율은 1.39였다. 인구전망이 계속 빗나간 후에야 일본은 그 심각성을 깨닫고 2015년에 ‘1억총활약상’이라는 인구 전담 장관직을 만들었다.
인구전망과 장기 재정전망은 참고 자료일 뿐이다. 지금은 불확실한 전망에 얽매일 때가 아니라 미래 재정 기반을 살려내기 위해서라도 재정을 적극 활용할 때다. 집단자살을 방치하는 재정건전성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나마 지금 한국의 양호한 재정건전성과 일본 중국을 앞서는 국가신용도도 아기들이 덜 태어나고 베이비붐 세대가 덜 은퇴해서 만들어진 과도기적 효과일 뿐이다. 5년 남짓 남은 이 과도기에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언제 할 수 있겠는가.
인구는 운명일 수 있다. 1971년생의 수가 2016년생의 2.5배가 넘고 이들이 앞으로 36년 이상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나 2018년에 태어날 아기의 수는 아기를 가질지 말지, 결혼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젊은이들의 오늘 밤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거칠게 말하면 내년부터 5년간의 출산율은 현 정부의 책임이다. 지금까지 재정 효율이 낮았다면 지원이 적절하고 충분했는지, 또 어떻게 해야 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지 이들의 입장에서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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