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6:36~40>
□ 표징을 구하는 기드온
하나님은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시기 위해 기드온을 큰 용사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미디안의 군대와 싸우기 전에 큰 용사로 기드온을 준비시키고 무장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기드온이 또다시 하나님께 표징을 구합니다. 부르심을 입었을 때 불의 표징을 구하였던 기드온이 전쟁에 앞서 또다시 표징을 구한 것입니다.
그러면 또다시 기드온이 하나님께 구한 표징이 내용은 무엇입니까?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드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37절) 그런데 38절을 보면 다음 날 아침 기드온이 일찍 일어나서 가보니 자신이 준비한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고 주변 땅에는 이슬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요청을 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또다시 하나님께 표징을 구합니다. 양털에만 이슬이 있고 주변 땅은 마르게 된 이 현상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자연의 현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드온이 또다시 구한 두 번째 표징은 무엇입니까?
이번에는 반대로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39절) 그런데 하나님은 그 밖에 그대로 행하셨습니다.(40절) 다음 날 아침 기드온이 가서 보니 주변 땅에는 이슬이 내려 축축하게 젖어 있는데 양털 뭉치는 물기 하나 없이 뽀송뽀송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화를 내거나 진노하지 않으시고 기드온의 두 번째 요청도 들어주셨습니다.
□ 불신앙인가? 연약함인가?
그렇다면 두 번째 걸쳐 하나님께 양털의 표징을 구한 기드온의 이 행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불신앙으로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연약함으로 보아 할까요? 하님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미다안 군대와 싸우기 전에 놀라운 은혜를 경험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은혜를 받은 기드온이 전쟁에 얖서 또다시 표징을 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기드온의 이런 행위를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는 이런 기드온의 행위를 불신앙으로 보기보다 기드온의 자신의 연약함으로 보고 싶습니다.
□ 기드온의 연약함
첫째, 하나님의 꾸중이나 책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에 의해 직접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부르심을 받은 날 불의 표징을 통하여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충만하게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3만 2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나아가서 미디안과 싸우겠다며 자신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무슨 표징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기드온은 나아가 싸우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또 "주께서 내 손으로 이스랑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이라고 말하며 양털의 표징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의 이 행위에 대하여 화를 내거나 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책망이나 꾸중도 하지 않으시고 두 번의 표징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기드온의 이 행위를 불신앙으로 보지 않으시고 기드온의 연약함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승리의 확신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은 양털의 표징을 하나님께 구하면서 모두 '엘로힘'이라는 하나님의 명칭을 사용하였습니다. '엘로힘'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기드온은 표징을 통하여 자신을 부르시고 말씀하신 이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데 대한 믿음이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믿어지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오합지졸의 군대를 거느리고 막상 13만 5천 명이나 되는 미디안 연합군과 싸우려고 하니까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드온의 연약함이었습니다.
□ 연약함의이유
첫째, 적군이 너무 크고 강하기 때문이다.
나의 군대는 너무나 작고 초라해 보이고 내가 싸워야 할 군대는 너무나 강하고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 번의 전투 경험도 없는 3만 2천명의 오합지졸의 사람들을 데리고 나아가 13만 5천 명의 군대와 싸우려고 하니 현실적으로 미디안 연합군의 군대가 너무나 크고 강하게 보였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 전쟁은 싸우러 가는 전쟁이 아니라 죽으러 가는 전쟁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둘째, 여쭙기만 하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은 왜 이런 은혜를 경험하고도 또다시 양털의 표징을 구하였을까요? 기드온은 왜 그런 체험을 하고서도 적군의 군대보다 더 크고 강하게 보였을까요?
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기드온이 전쟁에 앞서 기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여쭙기만 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드온이 여호와의 영이 자신에게 임하고 3만 이천의 군대가 자신을 따따르고 미디안이 군대와 싸우겠노라 나섰을 때 기도의 무릅을 끓었다면 그는 양털의 표징을 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많은 체험을 하였어도 기도의 무릅을 꿇지 않으면 문제가 커 보이고 싸워야 할 적이 더 커 보이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문제가 더 커 보입니다. 사람도 커 보입니다.
그래서 실제의 현장에서 우리의 믿음이 작동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무릅을 꿇으면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커다란 문제도 작아져 보입니다. 그래서 무릎이 떨리거든 무릎을 꿇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 믿음의 수준을 따라
그렇게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고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여 또다시 양털 표징을 구하는 기드온에 대하여 하나님은 화를 내거나 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린 아가 막무가내로 떼를 쓰며 요구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고 들어주시는 엄마의 모습처럼 기드온의 요구를 다 들어주셨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 하나님은 신앙의 수준에 따라 그 사람을 대하십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자마자 아들을 주시고 그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이 성장했을 때에 하나님은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역시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고전10:13절a)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장성한 분량까지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엡4:13)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은 성장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앉으십니다. 하나님은 내 믿음이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여 기드온처럼 표징을 구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표징이 없어도 주님을 신뢰하므로 나아가 싸우기를 원하십니다. 내 눈에 아무 증거가 보이지 않아도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능력으로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께서 내 인생 가운데 허락하신 그 산자를 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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