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2] 2008.

부모를 경외함이 거룩함이다/김은호 목사(제30권 19호.2018.5.13

꿈 꾸는 소년 2018. 6. 12. 03:12

☞ 엡 6:1~3, 레 19:3


  □ 이렇게 부모를 섬기라

  첫째, 주안에서 순종하라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 "순종하라"의 헬라어는 '휘파쿠오'입니다. 휘파쿠오는 '아래에서'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휘포'와 '듣다'라는 뜻을 가진 '아쿠오'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말의 휘파코우는 '아래에서 듣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순종이라? 아래서 듣는 것입니다. 그리니까 부모 공경은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식들이 부모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만 하면 또 잔소리한다고 핀잔을 주고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말씀을 하느냐며 도리어 호통을 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순종은 부모님 말씀을 귀담아듣고 그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함에는 조건이 없지만 순종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이 무엇입니까? 바로 '주 안에서'입니다. 예를들면 부모가 '예수를 믿지 말라', '기도를 하지 말라', '우상을 숭배하라'며 진리를 거스르도록 강요한다면 우리는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내 영혼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이 아니라면 우리는 부모의 부모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까?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 이것이 옳다는 것은 이것이 의롭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의롭다는 것은 이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옳고 의롭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조건 없이 공경하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라"(엡6:2) "구약에서 "부모를 공경하라" 할 때 공경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무겁다는 뜻입니다. 신약에서 공경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존경하다', '칭찬하다', '귀하게 여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부모의 무게를 인정하고 부모를 존중히, 가치 있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경의 반대는 무엇이겠습니까? 경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잠23:22절에서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경히 여기지 말라'는 말은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를 가볍게 여기는 자녀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허물이 많다는 이유로,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이 없다는 이유로, 아니 유산을 물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업자금을 대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를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아니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공격하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를 조건 없이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손종은 '주 안에서'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공경하는 말씀에는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를 낳아 주셨다는 그 이유만으로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고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조건 없이 부모를 공경해야 할까요? 그것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계명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은 1계명부터 4계명까지 하나님에 대한 계명으로 되어 있고 5계명까지는 사람에 대한 계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첫 번째 계명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리고 10계명 중에 복이 약속된 계명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복은 무엇입니까?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3)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공경이 공경을 나하고 복이 복을 낳습니다. 내가 부모를 공경하면 그것을 보고 자란 자식이 그 부모를 공경합니다. 그래서 땅에서 잘 됨과 장수의 축복이 자자손손 이어지는 것입니다.


  셋째, 부모를 공경하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공경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19:3) 사전을 찾아보면 경외라는 말은 '공경하면서 두려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를 경외하라는 말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보다 더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경외라는 말은 하나님께만 사용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인 부모에게도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만 사용될 수 있는 이 경외라는 말을 부모에게도 사용되었을까요? 그것은 이 땅의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종교 개혁가 루터는 "부모는 자녀에게 있어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는 직분으로서만이 하나님의 대리자가 아니라 생명의 원천으로서 하나님 다음으로 신성하고 존엄한 대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부모를 무시하거나 저주하는 자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어떤 죄보다 아주 엄하게 다루십니다. "자기의 아저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받드시 죽일지니라"(출21:15)라고 했습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듯 육신의 부모도 경외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경외 = 부모님 경외입니다. 이 사실은 떼려야 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육신의 부모를 경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육신의 부모를 경외하면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를 욕되게 하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 육신의 부모를 경외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 부모를 경외함이 거룩함이다.


  레위기 19장은 거룩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계속하여 거룩함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나 여호와가 거룩하기 때문에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레19:2)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거룩의 규범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장 먼저 부모를 경외함이 거룩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레19:3a) 거룩한 규범들의 목록 중에서 첫 번째로 제시된 명령이 부모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룩함의 첫 번째 명령이 부모를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거룩을 말씀하시면서 가장 먼저 "네 부모를 경외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한 삶의 출발은 바로 무모를 경외함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함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정의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건의 가장 대표적인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건의 가장 대표적인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만 잘 섬기면 그것이 거룩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모님을 경외하는 것이 거룩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이라는 히브리어 단어 '코데쉬(kodesh)'는 '잘라냄', '부리함'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거룩이라? 구별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이 세상의 사람들과 구별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부모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알고 부모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거룩은 부모를 경외함으로부터,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밖에서 잘 해도 가정에서부모를 경외하지 않으면 구 사람은 구별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부모를 경외함으로 세상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