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2] 2008.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 김은호 목사. 제30권 33호. 2018.08.19.

꿈 꾸는 소년 2019. 7. 7. 00:00

 ☞ <시 62:1~5>


 시편 60편은 다윗이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하여 피난생활을 하고 있을 때 쓴 시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외롭고 가장 처절하고 가장 고통스러울 때 가장 절망적일 때 이 시를 쓴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게 내 운명이라며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우왕좌왕 하지 않았습니다. "노장은 살아있다"며 자기 스스로 이 난국을 해결하겠노라고 큰소리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헸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1절a) 그런데 원문에 보면 '오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백성들이 자신을 떠나고 아들 압살롬은 자신을 죽이려 하고, 예수살렘으로 돌아가 왕권을 되찾는다는 보장도 없는 그 절망의 상황 속에서 "오직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5절도 보면은 다윗은 "오직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5절a)라고 선포했습니다. 

 여기서 영혼은 영혼만이 아니라 자신의 전인격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의 전 존재를 다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까? "잠잠히" 바라보았습니다. 잠잠히 는 말은은 인간적인 수단, 사람의 방법 이런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렇다면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KJV에서는 "Truly my soul waiteth upon God" 하나님 앞에서 기다림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순히 기다리는 그런 기다림이 아닙니다. 감나무 밑에 앉아서 입을 벌리고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그런 기다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수동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죽치고 않아서 기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수동적으로 앉아서 세월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사람 앞에서는 침묵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하나님을 향하여 외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정말 인생의 어려운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앞에 나아가 자신의 마음음 토하였습니다.(8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수동적으로 앉아 세월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하므로 자신의 마음을 토하여 내는 자입니다.


 ♧ 사탄의 전략


 그런데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의 영혼으로하여금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는 사탄의 전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상황과 문제만을 보게 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약한 내 자신, 실패한 내 자신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또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전략은 다른 사람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를 배신하고 떠난 사람,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는 사람, 위선과 가식으로 나를 대하는 사람을 바라보게 합니다.

 왜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야가 낙심 사운데 빠졌습니까? 아합 왕의 부인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 왜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하는가?


  첫째로, 사람은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와 같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신을 넘어뜨리기 위해 공격해 오는 압살롬의 사람들을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흔들리는 울타리와 같다"(3절)고 말합니다. 집의 울타리는 도둑을 방어하고 마을의 담은 적군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런데 막상 환난이 오니가 문제가 생기니까 그 담과 울타리들이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방어 능력이 없다라는 말입니다. 자기가 의지했던 사람들도 배신하고 떠나더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넘저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와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도울 힘이 없는 연약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사람은 입김과 같기 때문이다.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깁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9절) 왜 사람을 입김으로 비유했을까요?

 입김은 허무하고 가볍고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입김은 한순간 사라져버립니다. 입김은 저울에 달 수 없을 만큼 가볍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모습이 바로 입깁과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입김처럼 허무하고 가벼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입김과 같은 사람을 의지하고 이런 입김과 같은 사람에게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면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왜 우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첫째로,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1절) 다윗은 이 상황에서, 이 절망에서, 이 고통에서 나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음을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43:11)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호13:4b) 

 그런데 어떤 분들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며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리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서 문제를 해결 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상황에서, 이 절망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을 죄와 죽음에서, 당신이 지금 처해 있는 절망과과 고통에서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습니다.   

  둘째로,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 요새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2절) 반석이라는 말은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말합니다. 세상은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요새이십니다. 요새는 가장 안전한 곳을 말합니다. 다윗은 환난 날에 나를 보호해 주시고 나를 지켜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오직 나의 반석이 되시고, 구원이 되시고,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