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2] 2008.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소서 /김은호 목사.제30권 34호. 2018.08.26.

꿈 꾸는 소년 2019. 7. 7. 00:03

 ☞ <사 33:1~2>


 ♧ 배경


  히스기야는 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 앗수르 정책을 포기하고 애굽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애굽과 동맹을 맺은 것에 대하여 대단히 진노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애굽과 동맹을 맺어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함이 너희 수치가 되며,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30:2~3)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애굽과 동맹을 맺은 것에 대하여 이렇게까지 진노하셨을까? 그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하나님과 의논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애굽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께 묻지 않고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스스르의 판단에 따라 뭔가를 결정하는 것은 죄에 죄를 더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친 앗수르 정책을 포기하고 애굽과 동맹을 맺자 앗수르의 산헤립이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유다 대부분의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였습니다. 대세가 이렇게 기울어지자 히스기야는 사신을 라기스로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왕하18:14)라고 했습니다. 항복과 더불어 왕이 원하는 배상금을 줄테니 제발 예루살렘을 공격하지 말고 철수해 달라는 것입니다. 앗수르 왕은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내도록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이것을 마련하기 위해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다 내주고 성정 문의 금까지 다 벗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앗수르 왕은 배상금만 받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을 정복하고자 성을 에워싸고 무력시위를 하였습니다. 앗수르 왕은 신하 랍사게를 보내어 온갖 조롱을 하며 히스기야에게 항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앗수르의 침략으로 온 나라가 초토화되고 예수살렘마저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히스기야는 기도의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이사야 선지자에게 보내어 하나님께 기도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성전에 들어가 랍사게가 보낸 굴욕적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히스기야로부터 기도를 부탁받은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는데 오늘 본문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 화 있을진저


 기도를 부탁받은 이사야 선지는 먼저 "화 있을진저"라며 앗수르를 향하여 저주를 선포하였습니다.(1절) 여기서 "너"는 앗수르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학대를 당하지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이고도 속임을 당하지 아니하는 는 바로 앗수르를 말합니다. 그리고 학대는 유다를 여러 차례 침공하여 약탈을 일삼고 무력 시위를 하며 온갖 조롱을 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속였다는 것은 예루살렘을 공격하지 않고 철수하는 조건으로 그 많은 뇌물, 전쟁 배상금까지 받아 챙겼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어기고 다시 유다를 공격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네가 학대하기를 그치면 네가 학대를 당하게 될 것이고, 속이기를 그치면 네가 속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사야 선지자의 이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 개입하심으로 앗수르 왕 산헤립이 이끄는 대군 십팔만 오천 명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왕19:35) 

 그리고 이 전쟁에서 패한 후 앗수르 왕 산혜립이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자신의 두 아들에게 배신을 당하여 살해를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앗수르는 이 예언이 선포된 후인 90년 후에 신흥 세력인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되었고 철저하게 학대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앗수르와 산혜립립은 이스라엘을 학대하는 것만큼 학대를 당하였고 속인 것만큼 속임을 당하였습니다.


 ♧ 여호와여 은혜를 베푸소서


  이렇게 앗수르에 대하여 저주를 선포한 이사야 선지자는 이제 여호와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여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2절a) 은혜란 아무런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건없이 배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여호와 사랑을 말합니다. 대가 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음이 은혜이고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자신의 죄인 됨을 알고, 은혜를 받아야 자신의 약함을 알고, 은혜를 받아야 세상을 이길 힘도 얻을 수 있고, 은혜를 받아야 시험도 이길 수 있고, 은혜를 받아야 사명도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므로 우리는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주를 앙망하였던 사람들은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2절b)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팔은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주님이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시고 능력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 힘이 되어 주시고 능력이 되어 달라고 말합니까? "아침마다"입니다. 아침은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위기의 순간만이 아니라 매일매일 새로운 하루가 시작될 때마다, 하루를 시작하는 그 시간마다 주님이 오셔서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시고 능력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이런 기도를 드렸을까요? 자신들의 힘과 능력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친 앗수르 정책을 포기하고 애굽과 동맹도 맺어 보았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항복과 더불어 원하는 엄청난 많은 예물과 배상금까지 주었지만 배신을 당하였습니다. 학대와 속임을 당하였습니다. 수치와 모욕을 당했습니다.

 이러면서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아침마다 주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시고 능력이 되어 주셔야만 우리가 살 수 있다." 그래서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힘이 되어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팔은 영원하신 팔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이 내 아래 있습니다.(신33:27) 하나님의 팔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팔로 안으실 때 취하는 자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이 내 아래 있다는 말은 영원하신 하나님님이 나를 품에 안기를 원하신다는 것이고, 우리는 품에 안겨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이 내 아래에 그 주님의 품에 안기지 못하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주님의 품에 안기십시오. 하나님의 품은 넓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품은 따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아품과 상처와 눈물을 다 감싸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외로움과 고독도 다 품어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응어리도 다 녹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주님의 품에 안기십시오. 주님의 품에 안기는 자는 요동하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의 품에 안겨 인생을 사는 자는 두려워 떨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팔이 내 아래 있어 나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때로는 인생의 풍랑이 휘몰아쳐 올 때 영원하신 하나님이  그 능력의 팔로 나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