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2] 2008.

응답을 확신하며 기도하라 / 김은호 목사. 제30권 35호. 2018.09.02.

꿈 꾸는 소년 2019. 7. 7. 21:12

 ☞ <사 33:3~4>


 ♧ 주께서 일어나시면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소서"라고 기도했던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과 멸망을 예언하며 기도했습니다. "요란한 소리로 말미암아 민족들이 도망하며 주께서 일어나심으로 말미암아 나라들이 흩어졌나이다."(3절) 여기 나오는 민족들, 나라들은 다민족 여러 나라로 이루어진 앗수르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심판하기 위해 일어나시면 유다를 침공한 앗수르 군대가 황급히 도망을 가고 흩어지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여기 "일어나다"는 말의 단어적 의미는 "높이다","들어 올리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높이신 것, 자신을 들어 올리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어서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권으과 영광을 만천하에 드러내심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일어서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을 의미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엄청난 심판과 멸망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영왕기하 7장을 보면 요란한 소리로 말미암아 민족들이 도망하며 흩어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을 치고 있던 아람 군대로 하여금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심으로 그들을 도망치며 흩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주께서 일어나심으로 아람의 군대가 도망치며 흩어지는 일이 일어났던 것처럼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는 저 앗수르 군대도 주께서 일어나심으로 도망을 가고 흩어지는 기적이 일어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께서 일어나심으로 ㄹ하나님을 대적하는 앗수르에게는 심판과 멸망을 자신들에게는 구원을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일어나시면 반드시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악인들에게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3:7절에서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꺽으셨나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모세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행진할 때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민10:35)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일어나시면 대적들이 흩어짐을 당하게 되고 도망을 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어나시면 악인의 모든 계획들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일어나시면 의인은 구원을 받았고 악인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시인처럼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시44:26a)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 전리품을 취하라


  4절은 하나님께서 일어나사 앗수르 대군을 물리쳐 주시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전리품을 취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적 기도입니다. "황충의 떼 같이 사람이 너희의 노략물을 모을 것이며 메뚜기가 뛰어오름 같이 그들이 그 위로 뛰어르리라"(4절) 황충을 단단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곡물을 먹어 치우는 메뚜기를 말합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황충의 떼가 곡식을 먹어 치우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앗수르의 패잔병들이 남기고 간 노략물을 유다 백성들이 마치 황충의 떼와 같이 달려들어 가져가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리품을 취하게 된다고 말합니까? "메뚜기가 뛰어오름같이 그들 위로 뛰어오르리라" 메뚜기가 먹이 위에 뛰어올라 갉아 먹는 것처럼 유다 백성들이 전리품을 그렇게 취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전리품을 취합니까?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입니다. 아무리 전리품을 취하고 싶어도 전쟁을 하지 않으면 전리품을 전리품을 취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삶을 영적 전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용사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영적 전쟁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이 많은 전리품을 취하기를 원하십니다.


 ♧ 응답을 확신하며 기도하라


  이사야는 주께서 일어나심으로 말미암아 민족들이 도망을 가고 나라들이 흩어질 것을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막연하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기도했습니다.(3절) 이사야 선지자가 기도할 때만만 해도 유다를 침공한 앗수르의 군대가 여전히 세루살렘 성을 에워싸고 무려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봐도 예루살렘이 함락을 당하고 유다가 패배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앗수르의 군대가 패배를 당하고 도망을 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주께서 일어나심으로 말미암아 나라들이 흩어졌나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흩어졌나이다" 과거 완료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사야 선지가 얼마나 응답을 확신하며 기도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4절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메뚜기가 먹이 위에 뛰어올라 갉아 먹는 것처럼 자신들이 앗수르 군사들이 퇴각하면서 버리고 간 전리품들을 취하게 될 것을 바라보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응답을 확신하며 기도하는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전리품을 전하게 되는는 것까지를 바라보며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만 하느라 바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바라보며 기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기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사탄의 결박이 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악한 영들이 일곱 길로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악한 영들이 일곱 길로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녀의 변화된 모습을 바라보며,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기자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이런 사람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1:6~7)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도하는 우리에게 이런 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너무나 많은 분들이 의심을 품고, 두 마음을 품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기도하면서도 자신을 자책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자책하거나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의심의 먹구름이 드리워진 채로 기도를 시작했을지라도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믿음 역시 기도의 자리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앤드류 머리는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믿음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말씀을 붙들고 주님을 바라보고 있으면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성령이 역사하시면면 확신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끝까지 기도의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기도하면 성령께서 주시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응답의 기쁨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무나 분명한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응답을 확신하는 기도대로 앗수르 군대는 하룻밤에 18만 5천명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자들도 살아남기 위해 도망을 가거나 흩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앗수르왕 산 헤랍은 반역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오래 많은 시간을 기도했느냐? 보다 얼마나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며 기도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