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딤후 3:13~15>
♧ 확신이 없는 세대
지금 우리는 너무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인 우리의 자녀들을 보면 확신이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 성공에 대한 확신,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망 원인에 대한 통계를 보니 10대, 20대, 30대의 사망 원인은 자살이 압도적 1위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미혼 남녀에게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1/4인 24%가 결혼을 포기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기도 응답의 확신도 없고 하나님의 사랑, 죄사함,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확신이 없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땅에 오사 우리를 죽으심으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해 보이셨습니다.(롬 5:8) 우리 하나님은 확신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 너는 확신한 일에 거하라
본문도 보면 사도 바울이 죽음이 임박한 그 마지막 순간에 믿음의 아들이요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라"고 권면합니다.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말은 "계속하여 머물라, 굳게 불들라"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확신을 가지고 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믿음의 아들이요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이렇게 확신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첫째, 확신이 없으면 신앙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확신이 없으면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도 없고, 확신이 없으면 영적 전쟁도 할 수 없고, 확신이 없으면 평안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확신 있는 가르침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확신이 있는 자가 미래를 앞당겨 오늘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는 자는 미래를 앞당겨 오늘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지금의 고난이 힘들고 어렵지만 이 고난이 장차 내게 유익이 될 것을 믿기 때문에 오늘 감사하고, 오늘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미래를 앞당겨 오늘을 염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여전히 고난 가운데 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실 것을 믿기에 오늘 감사하며 확신을 가지고 삽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확신을 가지고 오늘을 살았습니다.
♧ 누가 확신을 갖는가?
그러면 확신을 갖기 위새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니, 누가 확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까?
배우는 자입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14절) 배워야 합니다. 배우지 않고는 누구도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까?
①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15절b)
②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16절)
③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때문입니다.(17절)
진리의 말씀,생명의 말씀만이 우리에게 확신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떤 체험도 어떤 삶의 노하우도 우리에게 확신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말씀을 배워야 합니가?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15절a) 할 수만 있다면 어릴 때부터입니다. 딤후 1장 5절을 보면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하여 말씀을 배웠습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배워야 변화하는 시대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고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의 역사와 정보와 지식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그것과 더불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확신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습니다. 확신은 혈육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녀가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어릴 때부터 말씀을 암송하게 하고 말씀을 묵상하게 하고 말씀 안에 거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금 성경도 없이 신앙생활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니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부모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부모는 신앙이 있는데 자직들은 신앙이 없습니다. 신앙이 없다 보니 당연히 확신이 없고 확신이 없으니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살가는 것입니다. 부모의 일차적인 책임은 내 자녀를 신앙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모된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라리라"(잠 22:6)
그러므로 부모 된 우리는 내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제부터 가르쳐야 합니까? 태중에 있을 때부터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신앙은 조기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왜 신앙의 조기 교육이 필요합니까?
그것은 늙어도 말씀이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잠 22:6) 그리고 사람은 깨달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깨달음을 통해서 감동을 받기도 하고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익숙해져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 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여야 하는가?
왜 우리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여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악한 자들과 속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13절) 바울은 지금 말세의 특징을 말하면서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악한 자들이 더욱 악하여져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악한 자들은 앞으로 더 악하여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악한 자들, 속이는 자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8절을 보면 진리를 속이고 대적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8절a) 얀네와 얌브레는 아람어로 '유혹하는 자','반란을 일으키는자'라는 뜻입니다.
지금 빌립보 교회 안에 얀네와 얌블레와 같은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거짓을 유표하며 바울과 디모데가 전한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대적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얀네와 암브레와 같이 사람들을 미혹하며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하면 독선적이고 편협된 생각을 가졌다며 벌떼처럼 공격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는 창조의 질서를 뒤흔드는 젠더(gender) 이데올로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류가 지켜온 덕성과 도덕, 정절을 부정하고 동성애를 옹호합니다.
그런데 우리 자녀들이 우리 자녀들이 살아야 할 세상이 바로 이런 세상입니다. 불법이 성행하고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워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자녀들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확신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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