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 2:14~15>
♧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
아담의 타락 이후 우리 인간 세계에서 가장 큰 권세는 죽음의 권세였습니다. 그래서 이 죽음의 권세 앞에 돈도 명성도 권력도 무릅을 꿇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왕 노릇을 하였다고 했습니다.(롬 5:17a) 사망은 왕처럼 무소불위의 권세를 가지고 인간들을 농락하며 다스려왔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이 싫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이 두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도 이 누구도 이 죽음을 거역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죽음의 권세와 맞서 싸워 이겼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이 죽음의 권세가 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치르시기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망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소불위의 권세를 가진 죽음이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에 의해 삼킨바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사망이 왕 노릇하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사망이 통치하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죽음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으로 거듭났고 그 부활의 생명을 가진 우리들도 오늘 자신을 향하여 달려오는 사망을 향하여 이렇게 외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신 예수님
본문은 먼저 예수님께서 우리와 동일한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14절a) 여기서 혈과 육은 피와 살을 말하는데 유한한 생명을 지닌 인간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
그런데 죄 없으신 우리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와 같은 모양으로 유한한 존재가 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사 우리와 함께 혈과 육을 지니셨습니까?
♧ 죽음의 세력을 멸하신 예수님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심시며"(14절) 성경은 마귀를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마귀를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죄의 주인이 마귀이고 마귀로 인해 죽음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마귀를 없애버렸다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멸하셨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나타나신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b) 여기서 마귀의 일을 멸하셨다는 것은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귀의 일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10: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요 10:10a)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가 하는 주된 일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 어떻게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를 멸하셨는가?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습니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14절b)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는 일은 성육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그 사실만으로는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핫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의 죽으심이 죽음의 세력을 자를 멸하실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죗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죄의 값은 죽음 입니다.(롬 6:23)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은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입니다. 이 말의 뜻은 '지불하다. 완불하다. 청산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주인인 마귀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셨습니다. 그동안 마귀가 우리를 지배하고 농락하고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셨기에 죽음의 세력을 잡은 곧 마귀는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죽음의 세력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산불에 포위된 자가 자신의 주변에 불을 놓음으로 산불이 임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죽음을 정복하는 길은 바로 죽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제일 큰 원수요, 마지막 원수인 이 죽음을 정복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사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시고 죽으심으로 더 이상 죄와 죽음의 법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 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를 멸하셨는가?
그러면 왜 예수님은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습니까?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15절)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기 위해서입니다."(15절)
그렇습니다. 죽음은 모든 인간을 한평생 종 노릇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해 하루하루를 염려와 초조 속에 살아갑니다. 죽음의 법에 매여 있는 사람들은 죽기를 무서워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음 앞에서 겁을 내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왜 주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까? 당신의 죽으심을 통해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죽음은 이미 부활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는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는 결코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는 결코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비겁하게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히 11:35) "죽일테면 죽여라! 그러나 나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것이 부활신앙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오늘 나를 향하여 달려오는 죽음을 향하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라고 외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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