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 17:1~8>
♧ 기도의 산에 오르다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을 예고하신 날로부터 엿새 후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1절) 예수님은 왜 세 제자들을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오르셨을까요?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눅 9:28b) 누가는 이런 놀라운 일이 기도하실 때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9:29)
그러니까 변화산의 영광은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중에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생애의 기적과 체험은 모두 기도 중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기도하는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의 놀라운 기적은 거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은 기도할 때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할 때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도 없이다. 것은 그 어떤 것도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반드시 기도를 통해서 주어집니다.
♧ 변화산의 영광
세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기도 중에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2절)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변화된 이 모습은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로 죽으시고 부활하실 주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실 영광스러운 주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장차 여러분이 천국에서 뵙게 될 주님의 모습인 것입니다.(계 1:13~16)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서 만나게 될 이 예수님의 모습을 늘 그리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할 때에도 바로 이 모습을 생각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또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습니다.(3절)
그러면 왜 모세와 엘리야 두 사람만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을까요?
그것은 모세와 엘리야가 구약을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율범을 대표하는 사람이고, 엘리야는 구약의 선지자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구약을 대표하는 이 두 사람이 영광 중에 나타나 율법과 예언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요? 장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었습니다.(눅 9:31)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께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구약의 핵심이요, 율법이 말하고 선지자들이 증거하고자 했던 핵심이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신약은 오신 예수를 말합다.
그러므로 구약을 요약하면 장차 메시야가 오실 것이고 그 메시야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 변화산의 영광을 통해서 당신의 십자가에 대속의 사건이 구약 성경의 가장 핵심이요 중심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이렇게 변화산의 영광을 보았더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4절)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게 되고 또 그토록 보고 싶었던 모세와 엘리야까지 보게 되니까 그곳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구체적인 제안까지 하였습니다. 내가 여기 이 자리에 초막 셋을 지울 테니 산 아래고 내려자기 말고 산 위 이곳에서 머무르며 살자는 것입니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유혹도 없고 죄를 짓고 싶은 마음도 없고 인간관계의 갈등도 없고 물질에 탐욕도 없고 지금 이 상태로 있는 것이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예배드리는 시간이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그래서 11월 다니엘기도회가 끝나가면 계속 다니엘기도회를 하자는 분들이 있습니다.
♧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런데 그때 홀연히 빛난 구름 가운데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초막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 다시 그 산 위에 올라올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① 영적 체험보다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② 영적 체험보다 '말씀'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③ 영적 황홀경보다 '사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신비한 체험 속에 머물러 있도록 하기 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사명때문입니다.
♧ 오직 예수 외에는
제자들은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심히 두려워 그 자라에서 엎드려졌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보니 자신들 앞에는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8절) 모세와 엘리야도 사라지고 들려오던 음성도 그쳤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눈에은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오직 예수님만 남으셨습니다. 아무리 모세와 엘리야가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그분의 종이요 사환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떠나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에는 오직 예수님만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든지 간증을 할 때에든지 어떤 체험을 하든지 오직 예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드러나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드러나야 합니다.
♧ 산 위에 있지 말고 산 아래로 내려가라
9절을 보면 변화산에거 놀라운 영광을 체험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산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제자들을 산 위헤서 초막을 짓고 살기를 원했지만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을 듣고 산 아래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산 아래에는 귀신들린 한 아이가 우둠의 영들에 의해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산 아래에는 도적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어둠의 세력들로 말미암아 비참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산 위에는 빛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영광의 구름,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황홀함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좋았으면 베드로가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지어 살자고 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산 위에 머르지 말고 산 아래로 내려와야 합니다. 아무리 신비한 영적 체험을 했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영적인 황홀경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입니다. 영적 체험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현장에서 사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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