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15>
♧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주님과 관계가 맺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교회를 다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고도 얼마든지 종교적인 습관을 따라 교회를 다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주님과 관계가 맺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와 예수를 믿게 된 그 상태를 모두 주님과의 관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목자와 양의 관계, 친구의 관계, 주인과 종의 관계,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를 믿는 것을 하나님과의 관계로 표현하고 있을까요? 관계는 관념이 아니라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관계는 아주 실제적이고 구체적입니다.
여러분! 부모와 자식의 관계, 부부의 관계, 친구의 관계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제적입니까?
우린 한 번도 만나 본 적도 없고 대화를 나누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을 아버지라고, 친구라고 부리지 않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는 실제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순간 그 주님이 내 안에 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아빠 아버지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가장 먼저 하나님이 나의 아빠,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기 전까지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고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가 독생자 예수 그리스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빠,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그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행위에 의해서 된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양심이 다른 사람보다 더 깨끗해서가 아닙니다. 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예수를 영접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누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도, 솔로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었던 분은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없었습니다.(막 14:36; 눅 2:34)
그런데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양자의 영
그러면 어떻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을까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 8:15)
그러면 여기 종의 영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본문에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두려움으로 이끄는', '두려움을 초래하는' 영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종의 영이란 두려움의 영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두려움이 영인 종의 영을 받지 않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았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사시나무 떨듯이 떨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양자의 영을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는 영을 말합니다. 아무나 하나님을 아빠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들의 영, 곧 양자의 영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갈 4:6) 법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되었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안에 아버지를 보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의자하고 싶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하셨습니까? 성령님이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서 양자의 영으로, 아들의 영으로 오셔서 법적인 관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을 나의 아빠! 아버니라 부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 관계를 의심하지 말고 확신하라
첫째, 부모와 자녀 된 관계는 변치 않기 때문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예수님은 앞으로, 먼 훗날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순간 이미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양자의 영을 받아 거둡난 성도라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나의 아빠, 아버지이십니다. 이 신분의 변화는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결코 취소되지 않습니다. 잠시 동안의 실패가 자녀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어놓을 수 없는 것처럼 어떤 환란도, 고난도, 실패도, 아픔도, 눈물도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이 '다시'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과거의 무서워하는 종의 영의 지배를 받고 있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으로 돌아가지못한다고 말합니다.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다시 종의 영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요일 3:1a)를 말하면서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요일 3:2a)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여전히 허우적거리는 삶을 살고 있고 내 모습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내 느낌과 감정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변함없이 나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자의 영을 받은 자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 성령께서 친히 증언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16절)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의 영과 더불어 내가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내 안에서 증언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내 안아 계신 성령님이 증인이십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내 영과 더불어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나의 기뻐는 아들이다." 내가 연약하여 쓰러졌어도, 사단의 참소가 끊임없이 계속되어도,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도, 나에게 실망하며 내 자신 연약해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에도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나의 영과 더불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한다, 아들아, 사랑한다, 내 딸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ㄴ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아빠이시고 내가 그분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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