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2] 2008.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라 / 김은호 목사. 제29권 31호. 2017.07.30

꿈 꾸는 소년 2019. 7. 23. 00:32

 ☞ <겔 46:9~15>


 ♧ 예배란 하나님과 만남이다.


  예배란 하나님과 만남입니다. 모든 정한 절기에 왕과 모든 백성이 성전을 향하여 나아왔는데 하나님은 그서을 "나 여호와 앞에 나아오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9절a) 

 그러면 하나님 앞에 나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란 십자가 위에서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란 습관이 아닙니다. 예배란 형식이 아닙니다. 예배란 순서가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그분께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원어적 의미로도 보면 예배란 하나님을 만나 엎드려 절하고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단지 주님의 고난이나 십자가의 죽으심이나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배의 사람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을 나올 때 다윗과 이스라엘의 무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연주하였습니다.(대상 13:8) 또 다윗은 오벳에돔의 집에 있던 언약궤를 시 예루살렘으로 옮기려 할 때에도 여호와 앞에서 힘으르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삼하 6:14) 

 다윗은 자신의 아내인 미갈이 이것을 방탕한 것으로 여기며 비난할 때도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삼하 6:21절a)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다윗은 사람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였습니다.


 ♧ 하나님께 집중하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그 어떤 것에 집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자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본문 9절을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올 때에 북문으로 들어오는 절대로 남으로 나가지 말며 남문을로 들어가는 자는 절대로 다시 남문으로 나가지 말고 북문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절대로 오던 문으로 돌아가지 말고 직선으로 똑바로 나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에스겔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질서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회복되면 정말 많은 사람이 성전에 예배하기 위하여 찾아 나올 것이고 그러면 굉장히 혼잡해질 것이기 때문에 그 혼잡스러움을 막기 위하여 질서를 주신 말씀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 하나님은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4:33절a)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배자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나아오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예배자는 반드시 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배하는 자의 모든 초점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예배의 초점은 자기에게 있지 않습니다. 예배의 초점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북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다시 북문으로 돌아가지 말고 계속 직진해서 남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남문으로 들어오는 자도 역시 직진해서 북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 돌아오던 길로 나아가면 안 됩니다. 이 말은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배자는 절대로 등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등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관심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께만 시선을 고정시키며 나아가야 합니다.


 ♧ 예배의 정신은 평등과 일치이다.


  "군주가 무리 가운데 있어서 그들이 들어올 때에 들어오고 그들이 나갈 때에 나갈지라"(10절) 여기서 군주는 왕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왕도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기 위하여 나아올 때는 일반 백성들과 함께 있다가 그들이 예배하러 올 때 같이 들어오고 나아갈 때 그들과 함께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배할 때 왕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대우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말입니다. 예배가 뭡니까?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왕이신 하나님 앞에 예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왕의 신분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는 신분도 계급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가지고 일치된 마음을 가지고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예배의 정신은 평등과 일치입니다.


 ♧ 예배의 본질은 드림이다.


  예배의 본질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배를 자꾸 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보러 간다고 말하고 예배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드린다", 12절에서 15절을 보면 드림이라는 표현이 무려 6번이나 나옵니다. 예배의 본질은 드림입니다. 눅7장을 보면 죄 많은 한 여인이 전 재산인 향유를 팔아 예수님의 몸에 붓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여인의 숨결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의 머리를 풀어 예수님의 발을 씻기기 시작합니다. 

 왜 이 여인은 이렇게 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300 데나리온이나 되는 것을 왜 낭비하느냐고 분노하고 비아냥거렸지만 예수님을 사랑했던 이 여인에게는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 어떤 것으로도 계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내어 주시고 나를 사랑하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하나님께 내 인생의 최고를 드리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란 최고의 하나님께 내가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 예배의 중심


  "아침마다 일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한 마리를 번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리고"(13절) 번제를 드릴 때 어떤 제물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까? 일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년 되고 흠 없는 어린양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짊어지시고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예배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사라진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시간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이 예배하는 우리의 심령에 흘러 넘쳐야 합니다. 찬송할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항상 주님의 보혈이 우리의 심령을 적셔야 합니다.

 예배할 때마다 주님의 보혈로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을 씻어야 합니다. 보혈을 지나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