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삿 7:9~15>
♧ 영적 전쟁은 실제이다
하나님은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쟁을 위하여 친히 300명의 용사를 최종 선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드디어 미디안 공격을 명하셨습니다.(9절)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두 개의 명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① "일어나라" ② "내려가라" 일어나서 적들이 친을 치고 있는 곳으로 내려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은 실제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을 하려면 일어나야 합니다. 앉아서 할 수 있는 전쟁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군사로 치르고 있는 영적 전쟁 역시 실제입니다. 지금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대적 마귀와 실제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영적 전쟁을 씨름으로 비유하며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엡 6:12) 우리는 지금 이런 악한 영들을 상대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영적 전쟁을 씨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씨름은 다른 경기와는 달리 샅바를 붙잡고 살과 살이 마주치며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경기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적 전쟁이 바로 이렇게 샅바를 잡고 몸과 몸을 부딪히면서 하는 씨름처럼 실제적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지금 마귀와 가장 가까이에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어나라! 적의 진영으로 나아가라!는 말은 우리의 영적 전쟁이 실제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 승리를 확신하라
하나님은 그 밤에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고 명령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9절)고 말씀핫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전에 앞서 기드온에게 4전이나 반복하여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7절,9절,14절,15절)
하나님께서 이렇게 반복하여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비록 너와 함께 한 자가 300명 밖에 되지 않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승리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 입니다. 승리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은 이미 승가 보장된 전쟁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 위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그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5)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뱀의 머리를 깨뜨리렸습니다. 창 3:15절의 예언이 십자가 위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죗값을 완벽하게 치루셨습니다.
그래서 더는 사탄이 우리를 지배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죄인을 묶고 있는 사망의 줄을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끊어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전재을 할 때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하나님은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하가!" 명령하셨습니다.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저녁 당장 일어나 적진을 향하여 내려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내 손에 넘겨주었느니라" 승리를 확신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또다시 두려움에 사잡혔습니다. "만일 내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10절a) 하나님께서 승리을 선포하시고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라" 약속까지 해 주셨지만 기드온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러면 기드온은 왜 하나님으로부터 승리의 확신을 약속받았지만 또다시 두려워했을까요?
기드온이 두려워 떨었던 첫 번째 이유는 숫자를 계산하였기 때문입니다. 1%인 300명의 용사로 13만 5천을 이기려면 한 사람이 한 사람이 450명 이상을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계산을 하기 시작하면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왜냐하면 계산해도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단강이 갈지는 것,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명을 먹이는 것 계산이 됩니까? 계산으로 풀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는 동의하지만 실제로는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이 말은 계산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보다 계산이 앞서면 두려워 떨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계산된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기드온이 두려워 떨었던 두 번재 이유는 현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멀리서 미디안 연합군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미디안 연합군들이 자신들이 내려다보이는 골짜기에 있었습니다. 12절을 보면 기드온이 더 가까이 나아가서 보니 골짜기에 누워 있는 미디안 연합군의모습이 메뚜기의수와 같이 많아 보였고 낙타의 수가 해변의 모래처럼 많아 보였습니다.(12절) 멀리서 생각만 하고 바라볼 때는 별로 두렵지 않지만 막상 그 현장을 보게 되면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가 있습니다.
♧ 하나님의 배려
하나님은 결전에 앞서 또다시 떠는 기드온에게 " 내 부하 부라와 함께 적진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고 했습니다.(10절) 그래서 기드온은 가장 충성되고 믿음직스러운 부라를 데리고 그 진영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진에 이르자 미디안 연합군의 한 병사가 그의 친구에게 자신이 꾼 꿈의 내용을 말하였습니다. 미디안 병사가 꾼 꿈의 내용은 한 마디로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그 장막을 쓰러뜨렸다는 것입니다.(13절b)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꿈을 듣고 있던 친구가 기가 막힌 해몽을 하였습니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14절) 당시 보리떡은 가장 볼품없는 떡입니다.
그런데 미디안 병사들이 보리떡과 같이 볼품이 없는 자신의 이름까지 언급하며 "하나님이 미디안과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떠는 기드온을 위해 적진에 있는 한 병사로 꿈을 꾸게 하시고 그 꿈까지 해몽하여 기드온으로 하여금 그 시간에 들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 떠는 기드온을 향하여 이렇게까지 배려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워 떠는 기드온을 책망하시기보다 오히려 그를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미디안 군사를 통하여 승리의 확신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하나님의 배려가 곳곳에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받는 속죄제를 드릴 때 재물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집 비둘기나 산 비둘기를 잡아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살 여력이 안 되면 고운 가루를 가져다 속죄제물로 드리도록 하셨습니다.(레 5:11) 뿐만 아니라 레 19:9~10절을 보면 하나님은 곡식을 거둘 때도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들을 위하여 밭 모둥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까지 다 줍지 말고 포도원의 열매도 다 따지 말고 남겨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이 마로 배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본받아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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