立春을 앞둔 어느 날
지금은 남의 땅으로 넘어간
토평리 텃밭에 가 보았다.
作別하듯 虛虛로운 마음으로
왠지 모를 발길에 이끌려
옛 텃밭에 닿았다.
☞ 허허롭다 : ① 빈 느낌이 있다. ② 매우 허전한 느낌이 있다
농사철 내내 시름했던 잡초들이
至賤으로 땅바닥에 엎드려
죽은 듯 매운 계절을 견디고 있었고
그중에는 겨울냉이도 더러 보였다.
잠다던 味覺이 떠울라
언 땅을 헤집고 냉이 명 포기를 採取했다.
그 냉이 한 움큼에서 피어나는
生命의 香氣가 新鮮하다.
☞ 지천 : ① 빈 느낌이 있다. ② 매우 흔함.
☞ 헤집다 : ① 긁어 파서 뒤집어 흩다. ② 이리저리 젖히거나 뒤적이다. ③ 걸리는 것을 이리저리 물리치다.
비록 無意識의 잡초일지라도
얼어 죽지 않으려고
땅 속으로만 뿌리를 길게 내려서
살아남으려는 생명의 始原이
證票(증명이나 증거가 될 만한 표 )처럼 시퍼렇다.
☞ 시원 : 사물, 현상 따위가 시작되는 처음.
지금은 남의 땅이 된 텃밭에
우두커니 혼자 서서
지난 십여 년 초보 농사꾼이 되어
비켜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쌓인
자잘한 기억들을 떠올린다.
세월의 주름살 속에
켜켜이 묻혀 잊혀진 것들이
아주 사라진 줄 알았는데
至毒한 생채기들은 결코 지워지는 것이 아님을
이제야 알게 된다.
이지러운 세상에 마음 둘 곳을 찾다가
노년의 무거운 첫 짐을 내려놓았던
여린 농심마저도
이제는 마감이 저절로 다가왔다.
누가 말했었지?
빈 마음오르 텃밭에 살리라고.
저녁 어스름 산촌 마을에
밥 짓는 연기가 산자락에 걸린 듯
지난 세월 속 편린들이 스머스멀 기어나와
머릿속은 과거 속으로 내달린다.
흔들리면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삶의 고비들을 되돌아보며
회한 같은 외길을 용케도 잘 견뎌왔지.
그래
길이 아닌 길을 걸을 수는 없었지.
텅 빈 겨울 텃밭에 홀로 서서
살아온 날들이 만들어준 애잔함에
마음이 가랑비처럼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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