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세월을 아끼자 | ||||||
정평수 목사(만남의 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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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총체적 위기가 많았다. 전국을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넣었던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은 참으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반면 G-20 정상회의 개최국이며 의장국으로 세계의 눈길을 모았던 가슴 벅찬 순간도 있었다. 또한 중국 광저우에서 열렸던 아시안게임은 그야말로 작은 고추의 매운맛을 보여주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린 쾌거이기도 했다. 그밖에도 사회나 교계, 그리고 개인적으로 많은 사건들을 겪었을 것이다. 중요한건 지나간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렸을 때에는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던 적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세월의 속도는 가속도가 붙었는지 불쑥불쑥 지나간다.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달려가면서 기대와 함께 할 일을 다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두려움이 교차함을 느낀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시간들을 선용해야 한다는 새로운 다짐도 해 본다. 무엇에나 때가 있다고 전도자는 말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으며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3:1~8)는 말씀을 기억하며 2010년 한 해를 자문해 본다. 첫째, 성실하였던가? 나를 속이고 남을 속이면서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없었는가? 거짓과 불성실의 악을 범하지는 않았는가? 말씀의 거울 앞에 서자. 스스로를 바라보며 죄악이 있었다면 회개하고 남에게 해를 끼쳤다면 용서를 빌자. 또 나에게 용서를 청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자. 둘째, 최선을 다해 살았는가? 게으름을 부리지는 않았던가?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본분을 지켰으며, 도리를 다하고, 직책에 맞는 삶을 살았는가? 무사안일에 빠져 무기력하게 살지는 않았는가. 게으른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남은 인생을 낙오자처럼 무기력한 삶이 아니라, 상록수처럼 생기 있고 발랄한 삶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 셋째, 보람 있게 살았는가? 일하는 보람, 고생하는 보람, 노력하는 보람, 전도자의 보람, 기도하는 보람, 헌신의 보람, 크리스천으로써 뿌듯한 보람을 느꼈던 한해였는가? 행복의 알맹이는 보람이요, 보람은 행복한 삶의 결정체다. 가치 있는 일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기쁨은 행복이다. 얼마나 보람있는 일들을 이루는 한해였는가. 넷째, 얼마나 성장하였는가? 가정, 사업, 믿음, 선행은 얼마나 어떻게 성장했는가? 경제적, 사회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성장과 인간적 성장은 얼마나 이루었는가. 인격의 성장, 마음의 성장, 지혜의 성장, 순종의 성장, 은혜의 성장, 겸손의 성장 등...다시 오지 않을 한 해를 보내면서 이 같은 내면의 질문에 평점을 매긴다면 어떤 성적표를 받을 수 있는가. 며칠 전 종교인에 대한 신임도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천주교는 50%의 신임도를 받은 반면, 기독교는 18%의 신임을 얻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지난해 보다 추락했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대 사회활동은 활발히 하면서 이 같은 평가를 받는 원인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일반 성도들 보다는 지도자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다. 극히 일부지만 목회자의 윤리문제 등이 철저한 검증 없이 알려지면서 가져온 여파도 있지만 편안함, 무사안일, 무력감이 습관화 되어버리고 세상과 구별없는 이기심으로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한데서 오는 빛을 잃은 교회의 모습이 여과 없이 보여지면서 받은 평점이 아니겠는가. 교육의 부재 속에서 감히 제자가 스승을 조롱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도덕성의 부재는 충동적이거나 이해관계 없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감각을 잃은 세상속에서 기독교인들 조차도 방향을 잃고 방황하며 세상의 파도에 휩쓸려 온 것은 아닌가. 수많은 영혼들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데 깨닫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한 직무유기의 모습은 아닌가. 이제는 깨어야 할 때다. 일천만 성도들이 먼저 깨어나야 한다. 긴급한 일들이 우리 앞에 와 있지 않는가? 북한이 포문을 열어놓고 우리를 향해 발사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세상 속에 빠져 하나님 멀리하고 안일함과 나태함으로 죄짓다가 외적의 침략을 받고 포로로 끌려가 절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초토화된 고국을 바라보면 눈물짓던 선지자들의 모습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일들이 우리 땅에서 반복되게 할 것인가. 믿음의 지도자들이 앞장서 성도들을 깨우고 인도해야 한다. 나라가 사회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주님의 날은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이제 주님은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셨고 내게 주실 것이다.”라고 고백했던 사도바울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도록 하자. 천국에서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들의 신앙의 경주를 관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최선을 다해 주어진 세월을 아끼며 선용하고 끝까지 달려가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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