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는 교회의 덕(德)이며 파수꾼이어야~! (v 3.2)
(글쓴이 고태영 최종 수정일 2010.9. 4.)
하나님께서 죄인의 몸으로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어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님께서 지금 이시각에도 이 죄인들을 구원하고자 부지런히 역사하고 계신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가 넘치는 일인가!
이러한 은혜는 앞으로도 널리 전해져 한다.
이를 위해
20세기에 급성장한 한국 교회가 당면한 문제점은 무엇이고
21세기에 살고 있는 장로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장로(長老) 란 ?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보자.
너희 중에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벧전 5:1)
여기서 장로란 성경중에 나오는 감독과 동의어로 보면 되고
오늘의 목사와 장로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일부 교단에서는 달리보는 견해도 있지만...)
죤 칼빈으로 시작된 장로회 정치제도를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면,
장로교회란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장로회 정치형태를 채택한 교회로서
자율성과 민주주의 원칙이 강조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해 목사와 장로를 세우시고 기름부어 주시는데
설교와 치리를 겸한 자를 목사라 하고, 치리만 하는 자를 장로라 한다.
여기서 잠시 장로의 역할과, 장로의 책무는 어떻게 다른가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1) 장로의 역할이란 '장로로서 기대되는 행동유형 (role)' 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2) 장로의 책무는 '장로로서 책임지고 해야 할일 (duty, obligation)' 을 말한다.
위의 2가지는 그 뜻함이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장로의 역할과 장로의 책무는 내용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역할이란 단어는 단순히 기능을 뜻하는 반면에, 책무는 사명감, 책임감을 강조하고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장로로서 기대되는 행동이 무엇인가 하는 수준을 넘어
이 시대에 장로로서 책임지고 꼭 해야 할 일, 바로 책무(責務, duty, obligation)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따라서 아래의 글을 읽으면서 단순한 장로의 역할보다는
장로로서의 사명감, 책임감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기독교의 성장 추세는?
이제부터는 우리 한국 기독교의 현실을 살펴보자.
해방이후 기독교는 크게 성장하여 왔다.
도심의 밤에 십자가의 불빛이 가히 장관이며
지구상에 있는 각 나라 땅끝까지 2만명에 달하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이런 은혜의 사역이 미래에도 계속 확대되어야 하는데,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인가~?
애석하게도 최근 5년간 통계를 보면
천주교는 월등한 성장을 했지만 개신교는 감소하고 있다.
무엇이 국민들의 마음을
개신교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을까?
개신교의 성장이 뒤로 갈 수 밖에 없도록 한
한국 교회의 문제는 무엇이며
평신도의 대표인 장로들이 이 시대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의 지경을 넓히는 사역은 멈출 수 없는 것인데
한국 교회가 자기 역할을 감당하지 못함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하나님 백성이 어둠에서 고통당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또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친백성 하나 하나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고 계신지는
모두가 마음 속 깊은 곳에 크게 새겨야 할 것이다.
교회에 분란이 생기면
그 성도가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잘 마무리 해 주셨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이 맞는 생각일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성도가 많다고 칭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양육하라고 보내주셨으니까~
다만,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맡겨준 성도들을 몇명이나 실족하게 하였는지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심을 유념해야한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눅 15:4)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마 18:6)
교회를 치리과정에서 한 생명도 실족하게 해서는 안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의 당면 문제를 믿는 자 모두가 합심해서 시급히 해결하도록 힘을 모아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오늘의 한국교회 문제
미래의 더욱 큰 성장을 기원하면서
우리가 당면한 한국 교회의 문제중 가장 심각한 문제 3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문제 1. 교파의 분열
한국에는 5만 개가 넘는 교회들이 있다.
사람 있는 곳에 교회가 있어야 하지만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교회로는 너무나 많다. 특히 도심에~.
교회 위에 교회가 있고 교회 건너 교회가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이렇게 많은 교회가 분별없이 설립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한국에 수많은 교파들이 있기 때문이다.
교파의 수가 140 여개라는 의견도 있고 200 여개가 넘다는 의견도 있다.
이 많은 교파들이 자기방식으로 교회를 세우고 수많은 목회자를 배출하고 있기 때문에
이 땅에 교회와 목회자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넘침은 더 할 것이다.
감리교의 경우
설문조사에 응한 5,591교회(총 6,014개)중에서
40%가 미자립교회이며
이들을 위해 감리교의 교리와 장정을 개정하여
자금지원을 강화하려고 추진중이란다. (국민일보 2009.7.29)
미자립교회는 목회자 스스로도 엄청난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평신도들은 이런 도심의 개척교회(?)에 대해 지원을 감당해야하고...
일반 국민들은 이런 교계 현실에 비웃음을 보내고...
목사 배출 규모 줄이기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열매를 맺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는 움직이지 않으시고 반면에 사탄의 적극적인 방해가 있으니...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각 교단 및 교파 감독자들은 개별 교회를 통제할 능력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잘 통제하는 교단도 일부 있겠지만 대부분의 교회들은
치리도, 예배도, 설교도, 선교도, 봉사도 다 제 각각의 방식으로 행하고 있다.
심지어 성경 해석까지도...
교파 분열의 부작용이 너무 심각해지고 있다.
문제 2. 십일조의 존속
통계청 발표 자료에 의하면 개신교 대신 천주교를 택하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그 원인으로 위에서 지적한 교파분열 다음으로 심각한 것은
십일조 제도이다.
십일조와 할례는 율법시대의 것이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로 인해
이 두가지는 모두 없어져야 한다.
결국 할례는 없어졌다.
그러나 십일조 제도는 천주교에서는 폐지되었으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부 국가의 개신교계 일부에서는 아직도 남아 있다.
신약 성경에서 존립 근거가 없어진 십일조 헌금 제도가
믿음을 시작하려는 성도에게는 불필요한 시험이 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도들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이것이 개신교 대신 천주교를 더 선호하게 되는 주요 이유가 되고 있다.
열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십일조, 그 이상을 드리는 성도도 많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에게 십일조는 은혜보다는 짐으로 여겨지고,
또한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성경적인 십일조 제도에 힘 입어
일부 교회에서는 넘치는 재원으로
더 큰 차도 굴리고 땅도 사고 높고 넓은 교회 건물을 짓는다.
세상사람들은 이를 비웃고 이들이 하나님께 오기를 거부하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천막 성전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 숭고한 나그네 정신은
점점 더 고전적인 사고로 파묻히고 있다.
십일조 제도가 과연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지,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연보 제도란 무엇인지 등 상세한 내용은
본인의 블로그에서 십일조에 관해 쓴 글( http://blog.daum.net/koting/15800693 )을
읽으시면 명쾌하게 이해가 될 것이다
문제 3. 목회자의 영향력 비대와 성도 대표인 장로의 사명감 결여
우리나라 교회에는 어려운 여건 가운데 교회를 설립하여 성장시키고 있는
‘설립목사(또는 1대목사)’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부는 2대 목회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와있다.
설립목사의 특징은 교회를 자기 몸처럼 평생 아끼다보니
치리(治理)에 대한 영향력 또한 대단하다는 점이다.
이 영향력은 순기능도 많지만 일부 역기능이 누적되어 큰 문제로 확대되곤 한다.
그래서 '바벨론에 사로 잡힌 한국교회'(백종국 지음)라는 저서에서 나오는
아래의 표현은 정확한 표현이라고 본다.
'지금 많은 한국교회들의 주인은
주님도 아니고 교인도 아니다.
자신을 ‘성직자’ 혹은 ‘주의 종’이라고 규정한 목사들,
그 중에서도 담임목사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장로들은 어떤가?
장로 개개인은 돈둑한 신앙을 바탕으로 목회자를 보좌하는데 열심이다.
그러다 보니 성도를 가르치고 성도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장로 본연의 역할에 대해서는 극히 소홀하고 미숙하다.
결국 'YES'에는 익숙하지만 'NO'하면 목회자에게 불경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목회자가 결심하면 무엇이건 할 수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교회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교회가 잘못되면 공산당보다도 위험한 집단이 된다'는
의견을 내 놓는다(극단적인 표현같지만, 이슬람교의 무장폭력를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될 것임)
한국교회의 목회자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 지 현실적인 예를 보자.
목회자가 다른 교파로 분리해 나가려 할 때 실패했다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교회를 아들에게, 또는 사위에게 물려주는 시도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이 세습으로 인해 많은 성도가 시험받고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은 많이 듣고 있지만...
우리는 중세기에 절대권력 속에서 부패했던 로마 카톨릭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개혁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세기 교황권은 태양이요, 왕권은 달에 비유되었지만
결국 그 권력때문에 부패하게 되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이 말은 정치 뿐 아니라 모든 사회 현상에 적용된다. 중세기 로마 카톨릭이 그랬듯이 지금의 개신교도 예외는 아니다. |
종교개혁자 루터가 주장한 만인제사장론(1520년)은
당시에는 현실에 맞지 않는 극히 파격적인 생각이었지만
그후 이 사상은 기독교의 근본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즉, 복음을 통하여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받고 또한 세례 받은 모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모두 하나의 자녀들로서 동일 신분임으로-
(1) 성직계층이 평신도, 국가 공직자들보다 우월할 수 없고
(2) 교황만이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 되며
(3) 평신도도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상이 종교개혁의 핵심이요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는 위와 같은 루터의 개혁사상과 죤 칼빈의 장로회 정치제도가
아쉽게도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있다.
목회자의 영향력은 비대하고, 상대적으로 평신도 대표인 장로들의 위치는
장로회로서의 의결기능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는, 형식적인 존재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 지?
이러한 비대칭적 현상으로 인해 목회자가 잘못된 길을 가고자 할 때
특히 1대 목회자(설립 목사)의 교회에서는 장로회가 있고 제직회가 있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 뿌리는 무엇이며 그 대책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한국교회의 문제들은 평신도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다.
교만과 탐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소수의 목회자들에게서 연유됨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잘 해 왔듯이, 앞으로 더욱 기독교 부흥을 선도해야할 목회자들인데
이 분들의 순교자적인 헌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의 어둠의 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길기다.
결론적으로 한국 교회가 정체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을 3가지로 요약하면 1) 교파 분열 2) 십일조 제도 3) 목회자의 영향력 비대와 장로들의 사명감 결여
이들 어둠의 뿌리는 이 시간에도 성도들을, 미래의 성도들까지 교회에서 멀어지게 하는 어두움의 세력으로서 영향을 끼치고 있다. |
그러면 대책은 무엇인가?
1번 문제의 대책은 교계 지도자들이 열쇄를 가지고 있어 별도 대책 제시를 생략하고
2번 문제에 대한 대책도 현재는 십일조 제도를 폐지한 교회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불길이 퍼져 순식간에 폐지될 것이므로 별도 대책 제시를 생략한다.
이 글에서는 3번째 문제에 대한 대책을 중점적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대책 1. 근원적인 대책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대책은 한 가지!
목회자 스스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백성을 진심으로 섬기면 교회는 부패할 수 없다.
이것이 최상의 대책이요 근원적인 처방이다.
‘목회자의 영혼은 아침 햇살처럼 맑아야 한다’고 설파한
어거스틴(Augustinus)의 진언이 바로 해결책이다.
아침 햇살처럼 맑은 목회자의 영혼 ~ !
그러나 불행하게도
교만함과 탐심과 구습을 쫓는 옛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천주교의 신부님들이 행하는 무소유(無所有)를,
불교의 법정 스님이 그토록 존경받으며 실천한 무소유를,
개신교 목회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적어도 나그네 정신의 본(本)은 꼭 귀감이 되어야 하는데
두레마을을 운영하는 김진홍 목사님의 글이 생각난다.
"이 세상에서 목사들이 해야 할 일을 하나만 꼽는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설교하는 것?
성경 본문 자체가 좋으니 그것을 읽어도 된다
부족하면 인터넷으로도, TV로도, 수많은 출판물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러면 목사가 이 땅에 있어야 할 최고의 이유는 무엇인가?
진실되게 사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인들이 목사의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고 크리스천들은 저렇게 사는 것이로구나 하고
느끼고 깨닫게 하여 주는 것이다.
목사가 이를 해야지 누가 하겠는가~!
김 목사님의 이 글에 담긴 참 뜻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면
이 시대에 장로의 책무가 무엇인지를 확연히 깨닫게 될 것이다.
대책 2. 자정(自淨) 노력
차선의 대책은 목회자 그룹 스스로에 의한 자정(自淨) 노력이다.
즉, 개인이 하기 힘들다면 그룹으로 추진하는 방법이다
그룹이 하는 것이니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온 대책이다.
최근 한국교회언론회에서 '한국교회를 위한 긴급제언'을 선언했다 (2009.5.14).
“인간적 욕심과 비 신앙적 결정으로 인하여
교단들이 쪼개지고 분열된 것에 대하여 회개하고 화합의 본보기가 되자~”
또한 “목회자가 세속적 가치에 오염되어 재리(財利)와 명예를 탐하고
말과 행동으로 본을 보이지 못하여 세상으로부터 비난받았던 일들을
한없이 부끄럽게 여기며 무욕(無慾)과 높은 윤리적 삶을 실천하자”
하면서 선언에 동참을 호소한다.
감리교 중앙연회 감독 선거에 나오신 한 후보의 공약(2010.8.)을 보면
'행정을 전산화하고 재정공시를 통해 투명성을 높이겠다'하였는데
아직은 미약하겠지만 미래를 내다볼때 매우 바람직하고 성과가 기대된다.
목회자 그룹 스스로 전개하는 이러한 자정(自淨) 운동이 한국교회 개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조그만 불길이 초원을 태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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