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 5:25~34>
□ 絶望의 여인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가장 可憐한 여인입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할 정도로 절망의 여인입니다. 그러면 왜 이 여인이 절망의 여인입니까? 이 여인은 12년 동안 血漏病을 앓고 있었습니다(25절). 혈루병이란 일종의 부인병으로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는 병을 말합니다. 현대의학에서는 이것을 下血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1년도 아닌 12년 동안 이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습니다(26절). 이 여인은 자신이 벼을 고치기 위해 많은 의사들을 찾았지만 병은 고치지 못하고 도리어 많은 의사들로부터 많은 괴로움을 받았습니다(26절). 이 여인은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만많은 의사들을 찾아갔지만 병은 고치지 못하고 도리어 많은 의사들로부터 많은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허비하고 말았습니다(26절). 고침을 받기 위해 그렇게 많은 의사들을 찾아갔고 자신의 모든 재산까지 다 허비하였지만 아무 效驗도 보지 못하고 도리어 병은 더 중하여졌습니다(26절).
더 나아가 여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버렸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아름다움과 魅力을 잃지 않고 살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여인의 본능입니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자의 欲求는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아온 여인은 여인으로서의 아름다움이나 매력을 다 喪失해 버렸습니다. 12년 동안 계속해서 下血을 했으니 皮骨이 相接하여 남은 것은 뼈와 가죽 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여인으로서의 正體性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상인으로 살아 갈 수 없었습니다. 레15장을 보면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르는 이 병은 부정한 병으로 여겨져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병이 걸리면 나병환자들과 똑같이 사람들과 함께 살지 못하고 공동체에서 쫓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성전이나 회당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그는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와 접촉하는 모든 것이 다 부정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레15:4).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가장 큰 悲哀는 疏外당하는 것과 잊혀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군중 속의 소이를 느낄 때 그 외로움과 고독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세상에서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언제나 혼자여야만 하는 외로운 여자였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할 수도 없는 저주받은 여자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다 못해 이제는 정말 눈물까지 말라버린 가련한 여자였습니다. 여자로서의 尊嚴性도 상실했습니다.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절망의 늪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기댈 사람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이보다 더 가련한 여인이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절망적인 여인이 있겠습니까?
□ 절망의 여인이 주님의 옷자랑을 만지다
그런데 27절을 보면 어느 날 이 절망의 여인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떤 병에 걸렸든지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병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는 순간 이 여인의 마음속에는 "내가 예수의 옷자락만 만지기만해도 내 병이 나을 것이다"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 절망의 많은 무리를 해치고 예수님께로 나아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① 疾病을 고침받았습니다.
"이에 그의 혈루 根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깨달으니라(29절)"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피가 멈추었습니다. 성경은 혈루의 근원이 멈추었다고 말합니다. 혈루의 근원이 말랐다는 것은 이 여인이 혈루병으로부터 완전히 고침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②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34절a)"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육체의 질병만 고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육체적인 질병만 치료하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여인을 향하여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체의 질병만 치료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여인을 향하여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체의 질병만을 고침 받고 끝나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이 여인은 육체의 질병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③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 받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34절)" 예수님은 이 절망의 여인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까지 주셨습니다. 딸아 평안히 가라! 이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12년 동안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마음의 아픔과 고독이 사라졌습니다. 세상에 대한 분노가 사라졌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의 마음의 아픔과 상처까지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아픔과 상처가 있었습니다. 12년 동안의 혈루병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아픔이 있었습니다. 버려진 자의 아픔이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분노가 있었습니다. 엄청난 병 고침을 받고도 가진 것이 없어 예수님께 나아가 감사의 예물을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罪責感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여인의 마음의 아픔과 상처까지 치유해 주셨습니다.
□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다
사람은 믿는 구석이 있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이 여인도 다른 사람들처럼 건강하고 가진 것도 많고 사람들과 더불어 잘 살 수 있었다면 결코 주님을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의지할 수 있는 재물도 없었고 자신을 도와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세상이 방법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게 되자 마침내 예수님이 옷자락을 붙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 여인에게 있어 절망은 소망이었고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사상가 중에 가장 진실한 사상가였던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 이라는 유병한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의 1부는 '절망하는 것이 죄다'는 명제 아래 인간이 절망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을 때 죽음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제2부에서는 '절망하지 않는 것이 죄다'라는 명제 아래 '인간은 절망할 때 비로서 하나님을 찾기에 희망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 구원을 이르게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닙니다. 절망에 때문에 주님의 옷자락을 붙들게 되고 절망 중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에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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