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 5 : 25 ~ 34>
□ 오직 예수
12년동안 혈루병을 앓던 절망의 여인이 고침을 받고 이런 축복을 받아 누리게된 것은 한 마디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향하여 "딸아 네 믿음이 늘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당할지어다(34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 절망의 여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고침을 받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믿음으로 암음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 받았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믿음으로 평가하십니다. 사람들은 外貌와 物質로 家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믿으으로 사람을 평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을 보실 때 언제나 믿음이 있는냐 없느냐를 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믿음은 들음에서
그러면 이 절망의 여인이 언제 믿음을 가졌습니까? 아니 언제 믿음이 생겼습니까? 이 여인이 모태신앙인입니까? 이 여인이 바리새인입니까? 주일학교를 다닌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믿음이 생겼습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27a)"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눈 앞에서 펼쳐진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는데 예수님에 대한 소문만을 듣고도 그런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사실 누구나 소문을 들었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소문을 듣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혈루병 여인은 절망의 상황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도 굳뉴스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지나가면서 하는 말 한 마디도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역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깁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 믿음의 생각
이 절망의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음으로 믿음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에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28절)"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각이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생각속에 잉태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 나도 그분의 옷자락만 만져도 구원을 받을 것 같다는 믿음의 생각이 든 것입니다. 12년 동안 어떤 의사도 고치지 못한 병인데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다고 나음을 얻을 수 있을까? 지금 내 몸도 추스르기 힘든데 많은 무리들을 뚫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가다가 쓰러져 죽는 것은 아닌가?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 의심의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부정적인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음의 생각을 한 것입니다. 생각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말을 낳고 말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을 낳고 습관이 인격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냐에 따라 영적 전쟁의 승패가 좌우됩니다. 영적 전쟁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삶에도 생각이 차으로 중요합니다. 생각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생각이 그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 내 인생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이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생은 생각의 결과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렘6:19).
□ 엘레겐의 기도
이 여인은 믿음의 생각을 통하여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그 믿음을 키워나갓습니다. 어떻게 그 믿음을 키워나갔습니까? 엘레겐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믿음을 키워나갔습니다.
"이는 내가 그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28절)" 여기서 "함일러라"는 말이 '엘레겐'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중얼중얼 거리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난 이후 계속해서 중얼중얼거리는 엘레겐의 기도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옷자락만 만져도 내 병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끊임없이 중얼중얼 거리며 기도했습니다. 화장실에 있을 때에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끊임없이 엘레겐이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엘레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여인은 漠然히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엘레겐의 기도를 드리며 주님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린 것입니다. 기도로 준비하며 주님을 만날 그 순간을 기다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엘레겐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믿음의 생각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엘레겐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 믿음의 행동
이렇게 엘레겐의 기도를 통하여 생각 속의 믿음을 키워 나갔던 이 여인은 마침내 주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때로는 신발이 벗겨지기도 하고 때로는 밟히기도 하고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였지만 힘을 다하여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두렵고 떨림으로 예수님이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이 여인의 믿음은 그저 바라만 보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기도만 하고 앉아 있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믿음대로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행함으로 표현되지 않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야고보 기자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 오직 예수(only Jesus)
이 절망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고침을 받던 그 날 그 현장에는 이 여인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고"라는 표현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몸과 옷자락을 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 여인만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왜 이 여인만 고침을 받고 이 여인에게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였을까요? 그것은 이 여인만이 오직 예수님만의 믿음을 가지고 나아왔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구경꾼으로 나아왔고 오늘 아니면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으로 옷자락을 붙들었지만 이 여인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나를 고칠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왔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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