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정통성 회복을 꿈꾼다
세상 향해 거룩한 믿음의 영향력 미치는 것
‘장로교 기초 요리문답’에 이어 방선기 목사의 생활신앙을 연재한다. 정체성마저 흐려져 가는 위기의 시대에 성경중심의 신앙생활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교인들이 지키고 행하는 삶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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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선기 목사 |
| 앞으로 다룰 주요 주제 : 개인, 가정, 교회, 학교, 직장, 재정, 사회, 윤리, 정치, 의사, 소통, 문화와 예술.
“사람은 누구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엡2:8-9) 그러나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약2:26)” 이 두 말씀은 얼핏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믿음에 대해서 균형을 잃지 않게 해주는 말씀이다. 이 두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믿음을 세 가지 차원에서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믿음의 첫 번째 차원은 믿음의 핵심 부분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이다. (1)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은 우리가 얼마나 ‘종교적으로 열심히 사는가?’, ‘얼마나 바르게 사는가?’ 와 무관하다.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얻게 되는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다.(요1:12) 이 믿음은 세상 사람들은 물론 크리스천들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만 알 수 있는 신비한 영역이다. 사람들은 본인이 고백하면 그것을 받고 믿음으로 인정할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보기에는 한심한 사람도 진실된 믿음이 있으면 구원을 받는다.
믿음의 두 번째 차원은 믿음이 종교적인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2)믿음이 있으면 예배에 참석하거나 개인적으로 기도를 하게 된다. 성경말씀을 읽기도 하고 좀 더 나아가서 연구하고 묵상하기도 한다. 교회의 지체가 되어서 봉사하고 전도의 사역도 감당한다. 교회 내에서는 주로 이것으로 믿음을 평가한다. 물론 이런 경건 생활이 믿음의 핵심은 아니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열매이다. 이런 것이 없다면 그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믿음이 있어야 이런 경건생활을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이런 경건생활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게 된다.
믿음의 세 번째 차원은 믿음이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3)믿음은 종교적인 영역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영역-가정, 직장, 재정, 윤리, 사회 등-에서도 나타나야 한다. 문자 그래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어떻게 하느냐를 통해서 믿음이 나타난다. 일상의 삶에서 우리의 믿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의 믿음은 역시 죽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역은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영역으로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평가하지만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평가하게 된다.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주로 이것으로 믿음을 평가한다.
몇 년 전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기독교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는데 가장 많이 비판을 받은 것이 바로 믿음과 삶의 괴리였다. 그런데 정확히 말한다면 그것은 믿음과 삶의 불일치가 아니라 종교적인 영역의 믿음과 생활 속의 믿음의 불일치를 말하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일상생활을 보면 도무지 믿는 사람으로 인정하기가 힘든 사람들을 보고 하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비판하는 기독교의 믿음은 바로 생활신앙의 문제다. 그래서 이 시대에 세상을 향해서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생활신앙의 회복이 절실히 필요하다.
생활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 가능하다. 생활신앙은 전통적인 경건생활과 달리 종교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다.(딤전 4:4-5)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세상에 살기 때문에 모르는 사이에 세속의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생활신앙은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세상은 때로 그런 것을 비난할지 모르지만 결국 그 믿음이 세상을 이긴다.(롬 12:2)
크리스천들은 세속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지만 세상이 기대하는 수준은 넘어서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생각의 근저에는 역설적으로 크리스천에 대한 기대가 담겨있다. 생활신앙은 그런 세상을 향해 믿음의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마 5:16).
현대 교회는 오소독시(Orthodoxy)의 회복도 필요하지만 오소프락시스(Orthopraxis)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진리의 정통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 이상으로 크리스천의 삶의 정통성을 회복해야 한다. 삶의 정통성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생활신앙의 목표이다. 앞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서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