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오직 주만 바라보라!<2012.1.1 / 제24권 1호>

꿈 꾸는 소년 2012. 1. 25. 10:20

☞ <대하 20:1~4 ; 12~13>

 

 □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2012년 우리교회 표어는 "오직 주만 바라보라"입니다. 이 고백은 유다의 4대 왕인 여호와사밧이 하나님 앞에서 한 고백입니다. 그러면 이 고백을 여호사밧은 누구입니까?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위에 오르자 국력을 培養하고 모든 성을 要塞화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상을 打破하고 종교개혁을 斷行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주변 여러 나라들에게 두려움을 주어 여호사밧을 대적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여러 나라들이 禮物과 짐승들을 朝貢으로 바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라가 부해지고 강해지니까 여호사밧이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가장 악한 왕이요 바알 崇拜者였던 북왕국 아합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하였던 것입니다(대하18:1). 그런데 이것이 불행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아합왕과 사돈 관계를 맺은 여호사밧은 아합과 함께 아람이라는 나라를 치려다 아합은 죽고 자신은 구사일생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인하여 국력은 쇠하여졌고 여호사밧은 선지자로부터 責望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 모압과 암몬과 미온 3개국이 연합하여 유다를 侵攻해 왔습니다(1절). 이때 여호사밧과 유다는 자신들을 치러오는 이 연합군을 대적할 능력도 없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할 방법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 속에서 여호사밧은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 오직 주만 바라본다는 것은?

 

  첫째로,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는 것이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백성에게 금식하라 公布하매(3절)" 여화밧은 세 나라가 연합하여 유다를 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호사밧이 그 두려움의 상황에서 자신의 낯을 여호와께로 향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두려움의 상황에서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사밧은 두려움의 상황 속에서 여호와께로 자신의 낯을 향하여 懇求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사실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두려움의 상황 속에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의 자리에서 여호와께로 자신의 낯을 향하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에 몰아치는 무서운 풍랑만을 바라보며 두려워떨고 있습니다. 或是 우리 중에 남편의 외도 때문에 자녀의 탈선으로 인하여 사업의 실패로 인하여 두려워 떠는 분이 계십니까? 그 두려움의 자리에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여호사밧처럼 그 두려움의 상황 속에서 주님의 얼굴을 구하십시오. 당신의 인생의 파도만을 바라보지 말고 미치도록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의 얼굴만 바라보지 말고 주님의 얼굴을 구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 모든 백성이 함께 금식하며 기도하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자신만이 주의 얼굴을 바라며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온 백성들에게 금식하며 기도할 것을 명하였습니다(3절). 여호사밧은 위기의 때에는 온 민족이 함께 모여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지금의 難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금식하며 기도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사실 전쟁을 앞둔 백성들에게 금식을 하라는 것은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러한 왕의 呼訴 앞에 다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려 모든 성읍에서 예루살렘으로 나아와 여호와께 간구하였습니다. 왕과 백성들이 한 마음이 되어 함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4절).

 

 둘째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말한 다음 이스라엘으 온 會衆과 가족들이 여호와 앞에 서 있습니다(13절). 왜 지금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가족들의 여호와 앞에 서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입니다. 앞에 서 있다는 것은 "주님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듣겠습니다"라는 믿음의 태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서 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여호와의 영이 회중 가운데에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였습니다(14절a).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임한 레위 사람 야하시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선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앞에 서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에는 언제나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셨는데 말씀하지 않고 떠나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지만 빛만 보이고 떠나신 적이 있습니까? 불만 보이고 떠나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시지만 빛만 보이고 떠나신 적이 있습니까? 불만 보이고 떠나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이 임하시는 현장에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주께서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했습니다(요10:3). 하나님은 지금도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때로는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때로는 내 곁에 있는 어떤 사람을 통하여, 때로는 내가 처한 사건과 환경을 통하여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드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드들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  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가?

 

 첫째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면 들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관심을 가지면 집중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안테나가 있어야 하는데 그 안테나는 바로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하겠습니다"라는 믿음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확신에 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두려움을 이겨내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제 2012년 새해가 시작이 되었습니다.저는 오륜의 모든 지체들이 주님만을 바라보며 달려갔으면 좋겠습니다. 오직 주만 바라본다는 것은 구호가 아닙니다. 두려움의 상황 속에서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