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칼럼

[세상읽기] 영원한 청년의 진정한 행복 / 우희종 - 한겨레

꿈 꾸는 소년 2010. 8. 18. 10:48
»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내가 아는 몇몇 선배들과 절친한 사이이며 미국 변호사인 따님을 둔 전형적인 강남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한 몇살 연상의 점잖은 분이 메일을 주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을 비판하며 ‘근거 없이 정부에 시비나 거는 사이비 좌파 교수’를 바로잡으려는 좋은 취지였다. 물론 개인적으로 알게 된 재벌 법조팀의 변호사한테서도 언론에서 본 내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던 차라 이런 상황이 낯설지는 않다.

 오가는 메일에서 점차 정부 정책에 대한 자신의 표면적 시각과 오해가 드러나자 그는 사안의 내용보다는 정부 비판적인 이들의 마음가짐을 지적했다. 하지만 참여정부 시절의 국회에서 내가 한나라당 증인으로 쇠고기 수입 정책을 비판했고, 당시는 소위 조중동도 지금의 촛불 측과 같은 주장을 했다는 자료를 받은 그는 한참 만에 답신을 보내왔다. 그의 마지막 주장은 사회 불만에 찬 당신들에 비해 자신은 사회에 불만도 없고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할 말이 없어진 그가 자신의 잘못된 견해를 인정하기보다는 그래도 나는 당신보다 행복하다는 것으로 가까스로 자신을 지키기로 한 셈이다.

 이런 식의 방어는 내게 별로 특별할 것은 없다. 새삼스러웠던 것은 그가 정부비판적인 좌파들은 모두 불행할 것이라고 단정한 점이다. 그는 나를 좌파라고 불렸지만 사실 나는 좌파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좌파의 정의도 다양하지만 나는 그런 공부도 하지 않았고 지식도 없다. 일전에 어떤 이가 크게 읊는 시를 듣고 주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눈물을 흘렸다. 낭송된 시의 내용은 여러 면에서 나와 달랐다. 그러나 그 시에 담긴 마음이 너무 와닿았기 때문이다. 백기완 선생님이 감옥에서 쓴 ‘묏 비나리’라는 살아있는 긴 시였다.

 눈물이 흐르던 당시 비록 내 나이 오십이 넘었어도 나는 내가 청년임을 알았다. 힘든 역사 속에 몸소 치열하게 삶으로 투쟁해온 운동가와 일상생활에서 종교적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하는 개인의 입장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공통점은 서로 청년의 꿈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태생적으로 출발부터 동일 선상에 서지 못해, 소외되거나 억압받아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하고, 더욱이 그러한 것이 체제에 의해 조장될 때 이를 과감히 시정해야 한다는 진보의 꿈이다.

 내게 메일 준 분이 자신이 소유하고 누리고 있는 것으로 행복하듯, 사회비판적인 이들은 청년의 꿈을 지니고 주변의 힘든 이들과 함께함으로써 행복하다. 물론 사회정의를 외치며 분신자살을 선택하는 이들이 겪는 단절 속의 고통과 분노에 찬 요구만을 본다면 그의 지적도 옳을지 모른다. 하지만 종교적 신념에 의거해 4대강 사업 중지와 사회 약자에 대한 배려를 말하면서 소신공양한 문수 스님의 비폭력적 저항이 분노에 차고 불행한 것이었다면 어떻게 상대방을 타이르며 상생을 말하는 유언을 남길 것인가. 자신을 버리며 사회 약자를 생각하는 사회적·종교적 저항은 그 무엇보다도 깊고 치열하다. 또한 자유롭고 평안하기에 분노를 넘은 꾸짖음과 타이름이 있다.

 그가 놓친 것이 있다면 나와 같이 종교적 맥락의 인간은 비폭력적이기는 하나 결코 지칠 줄 모르게 사회개혁을 추구하는 부류라는 점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나 철학도 없이 집단이익과 표만을 생각하며 무늬만 진보, 보수인 정치꾼들과는 다르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자타불이와 동체대비의 신념을 지닌 이들은 결코 힘든 이웃을 외면할 수 없다. 그것이 이들 삶의 원천이자 동력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사라질 자신의 소유와 권리로 행복을 느끼는 그분에게 너와 내가 더불어 가는 과정만으로 얻게 되는 또다른 행복과 즐거움에 대

 
»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내가 아는 몇몇 선배들과 절친한 사이이며 미국 한 메일은 보내지 않았다. 이미 늙어버린 그의 알량한 행복마저 무너뜨리는 잔인한 짓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사를 뛰어넘는 진정한 생명존중을 바탕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힘든 이웃과 함께하는 이는 영원히 늙지 않는 삶을 약속받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