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우리 민족에겐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살면 된다는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과 공감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도 나 못지않게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들의 믿음을 비판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관용과 공존의 지혜다. 종교에서는 이런 관용과 공존의 아름다운 전통을 가진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적 갈등과 마찰을 겪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과 토론하는 일은 즐겁지는 않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주장을 보면 역사관 세계관 인생관이 나와 너무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과 유엔이 아니었다면 남북통일이 되었고 한국의 경제발전은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 위에 재벌과 가진 자만을 위한 불균형 발전이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또 대한민국의 안보보다는 북한 정권의 붕괴를 더 걱정하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뚫리고 미쳐버린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의 차이가 지식과 정보의 차이 때문이라면 정확한 정보 제공과 소통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의 차이가 가치관과 신념의 차이 때문이라면 소통과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알라신을 믿는 사람에게 부처님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일과 같다. 오히려 그런 설득과 대화 시도가 갈등과 불신의 불씨를 더 키우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이념 갈등은 소통하고 화합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공존의 지혜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 공존이 가능하다면 좌우 이념 갈등도 그렇게 극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살면서 자기주장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태도가 공존의 지혜이고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종교와 이념에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종교적 차이는 예외도 있지만 결국 개인적인 문제다. 천국을 가든 극락을 가든 각자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된다. 이념 차이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법과 제도의 문제가 된다. 우파가 집권하면 좌파의 가치가 훼손되고, 좌파가 집권하면 우파가 원하는 세상에서 멀어진다. 따라서 좌우 이념 대립은 결국 선거와 헌법 절차에 따라 정치적으로 수렴해서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민간이 대화와 소통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국회가 민의를 수렴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념갈등과 이해상충을 국회로 옮겨서 국민 대신 토론하고 대립하고 타협해 달라는 말이다. 지금 한국의 정치권은 갈등의 수렴과 정화 장치라기보다는 갈등의 증폭과 전파 장치로서 더 기능한다. 이념 갈등은 제도를 통해 관리하고 조정해야 하는 과제지 해소해야 하는 과제가 아니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 전 한국경제연구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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