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 13:17~18> 너는 일어나 그 땅을 縱과 橫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居住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祭壇을 쌓았더라.
□ 挑戰하라
조카 롯을 떠나보낸 후 외로이 홀로 荒凉한 벌판에 남아 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네가 서 있는 곳에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그리고 보이는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네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 지게 하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當面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絶望의 자리 외로움의 자리에서 눈을 들어 東西南北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바라만 본다고 해서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전해야 합니다. 바라만 보고 도전하지 않으면 그 꿈은 一場春夢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17절)" 앉아서 바라만 보지 말고 앉아서 꿈만 꾸지 말고 , 앉아서 동서남북만 바라보지 말고 이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보라" 이 말씀은 이제 앉아만 있지 말고 일어나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앉아만 있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전해야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바라보았다면 이제 일어나 도전해야 합니다. 신앙은 도전 입니다. 신앙은 鬪爭입니다. 신앙생활은 『DO』이지『DO NOT』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무엇을 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에 무엇을 하지 말라는 계명이 많이 나오니까 신앙생활을 자꾸 무엇을 하지 않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둠의 길을 안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빛의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안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세상을 빛과 소금의 세상으로 바꾸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꿈을 바라보며 도전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삶에 安住하는 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 헤브론으로 帳幕을 옮기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말씀 앞에 머뭇거리거나 주저하지 않습니다. 곧 바로 일어나 텐트를 걷었습니다. 그리고 이사를 갔습니다. 어디로 갔습니까? 헤브론입니다. 그리고 약속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헤브론에 자신의 거주지를 정합니다(19절). 그러면 왜 아브라함은 헤브론으로 자신의 장막을 옮겼을까요? 그것은 방어의 이유 때문입니다. 헤브론은 높은 산지이기 때문에 적들이 쳐들어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멀리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동서남북을 멀리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키워가기 위해 헤브론으로 장막을 옮긴 것입니다. 우리도 장막을 옮길 때나 직장을 옮길 때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키워갈 수 있는 곳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바라보며 그 비전을 꿈꾸며 키워나갈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왜 아브라함은 가장 먼저 제단을 쌓았는가?
장막을 헤브론으로 옮긴 아브라함은 그곳에 거주하여 가장 먼저 무엇을 하였습니까?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자신의 장막을 짓거나 외양간을 짓지 않았습니다. 삶의 터전을 준비하기 전에 가장 먼저 제단을 쌍았습니다. 왜 아브라함은 헤브론으로 장막을 옮기자 마자 예배를 드렸을까요?
첫째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헤를 알았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에벤에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습니다. 롯을 떠나보내고 아름답고 기름진 땅을 다 양보한 후 '나는 어떻게 살아가나' 낙심하며 쓸쓸히 홀로 앉아 있을 때 찾아와 말씀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외로움의 자리 절망의 자리에 앉아 있는 나에게 찾아오셔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새로운 비전을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내가 눈에 보이는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리라" "네 후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 이 약속의 말씀을 주심으로 자신에게 힘을 주시고 자신을 위로해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베푸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약속을 주셨지만 자신의 힘만으로는 이 약속이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이 가나안의 원주민을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이렇게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이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믿었기에 가장 먼저 제단을 쌍은 것입니다.
□ 예배가 삶의 중심이 되게 하라
아브라함의 삶의 특징 중의 하나는 가는 곳마다 가장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가장 먼저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에도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제단을 쌓는 일입니다(창12:7). 뿐만 아니라 장막을 벧엘로 옮겨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장막을 치게 되었는데 그때도 아브람은 제단을 쌓았습니다(창12:8).
아브라함은 飢饉 때문에 애굽에 내려 갔다가 다시 가나안 땅으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그때도 가장 먼저 제단을 쌓았습니다(창13:4). 아브라함은 이렇게 예배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가장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쌍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아브라함에게 있어 예배는 그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최고의 우선순위는 바로 예배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예배를 가장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예배를 드릴 때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예배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가 이렇게 예배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아니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꿈과 비전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자는 예배를 思慕하며 생명처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배가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게 해야 합니다.
□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제단을 쌓았습니까?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18절b)"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예배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나의 소원을 성취하고 내가 복을 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그분을 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중심은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나를 지으시고 구원하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그 삼위일체 하나님께 몸을 드리고 마음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려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의 중심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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