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43:4>
'내 사람 금지옥엽' 이라는 TV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금지옥엽이란 "금으로 된 가지와 옥으로 된 잎"이란 뜻으로 아주 귀한 자손을 이르는 말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임금의 일족을 일컬어 금지옥엽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귀한 자손을 금지옥엽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4절a)"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너는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한 자라는 것입니다.
□ 보배롭고 존귀한 자
보배롭고 존귀하다는 말은 무엇과도, 그리고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여기십니다. 우리는 흔히 자식을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오늘 본문에 대해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는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이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4절a)"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당신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그렇게 사랑스러운 귀한 자녀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사랑이야.", "내 사랑 금지옥엽이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마귀의 음성을 들으려고 합니다. "야! 너는 별 볼일 없는 존재야. 너는 실패한 사람이야.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너는 무능력해." ,"네가 지금까지 한 게 뭐가 있어? 하나라도 제대로 한 게 있기는 해?", "너는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야,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존재야!"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너는 내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는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야?", "너는 내 사랑 금지옥엽이야.", "남들이 뭐라 해도, 아니 사람들이 너를 향해 한물 지난 사람이라 해도, 아니 무능하고 미래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너는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한 사람이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석은 어디에 있어도 보석인 것입니다. 보석이 땅에 떨어져 흙 가운데 밟혀 있다 할지라도 보석은 보석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보배롭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는 실수하고 넘어져도 여전히 보배롭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 내 눈이 아닌 하나님이 눈으로
속담 가운데 "제 눈에 안경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남이 어떻게 보든 자기 마음에 들면 그걸고 족하다'하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의 눈에는 자기 아이처럼 예쁘고 귀여운 아이가 없습니다. 남들이 객관적으로 보면 아닌데도 부모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부모의 눈에 자기 자식이 가장 사랑스럽고 예쁘듯이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보배롭고 존귀한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 하나님이 관점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타락한 죄성을 가진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한심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며 두려움 가운데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한 자녀야,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사랑이야"라고 말씀해도 '정말 하나님이 날 그렇게 사랑하실까?'라며 의심합니다. "내가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 죄인인데, 내가 얼마나 간사한 사람인데 하나님이 날 금지옥엽처럼 여겨주실까?", "내가 얼마나 넘어지고 또 넘어진 사람인데,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여겨주실까?"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주의하여 보십시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하나님 당신의 눈에 저와 여러분이 보배롭고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아닙니다. 하나님 당신의 눈입니다. 우리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내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嫌惡스럽습니다. 우리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어쩌면 이럴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될 만큼 형편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은 저와 여러분을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바라보십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이미 1절에서 생각했듯이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고, 하나님이 나를 구속하셨고,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부르사 "너는 내 것이라"고 당신의 소유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 누가 보배롭고 존귀한 자인가?
그런데 하나님은 누구를 보배롭고 존귀한 자라고 말씀하십니까?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바로 "네가"입니다. 여기서 "네가"는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말합니다. 지금 그들은 우상을 崇拜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포로생활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누가 봐도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凄凉한 사람들입니다. 이방 사람들로부터 嘲弄과 蔑視를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너는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한 사람이야, 너는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사랑이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에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設令 세상 사람들이 눈에는 별 볼일 없는 존재처럼 보이고, 실패한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당신은 보배롭고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가치이고 당신의 자존감입니다.
□ 존재 가치를 알라
왜 사람들이 쉽게 상처받고 쉽게 흔들리며 열등감 속에 인생을 살아갑니까? 가방끈이 짧아서입니까? 상황이 힘들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자존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만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사랑받는 만큼 아름다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사랑받지 못하는 만큼 자신감을 잃게 되고, 사랑받지 못하는 만큼 초라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받은 만큼 그 수준에 맞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는 만큼 존귀한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자존감이 중요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의 정체성이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자신이 정체성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정체서을 깨달으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흔들리는 인생을 살아갑니까? 왜 우리들은 작은 비난과 책망을 들어도 쉽게 좌절하고 낙심합니까? 자신의 존재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행복의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이 아무리 허물이 많고 연약해도, 그리고 실패하고 넘어져도 주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너는 네 눈에 보배롭고 존귀한 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것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의 눈에 보배롭고 존귀한 자입니다.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비교될 수 없는 가장 존귀한 사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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