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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김인규]전관예우는 범죄행위다

꿈 꾸는 소년 2013. 3. 11.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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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9 03:00: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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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김인규]전관예우는 범죄행위다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사회적 약자에게 법이 정의로운 방패가 되어주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도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잘못된 관행을 확실하게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 정부의 법조인 출신 고위 공직자들을 보면 과연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사라질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정홍원 국무총리부터 짚어보자. 그는 “변호사로 재직할 당시 (세금 빼고) 월평균 3000만 원 정도를 받았는데, 현재 변호사 업계 상황으로 봐서는 과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먼저, 맞는 얘기부터 해보자.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부산고검장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한 16개월간 월평균 1억 원 정도의 급여를 받았다. 그는 “세금을 빼면 한 달에 5800만 원 정도”라고 항변했다. 그의 세후(稅後) 수입은 정 총리 수입의 거의 두 배다. 따라서 월 3000만 원 수입이 과하지 않다는 정 총리의 주장은 일리가 있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이 틀렸을까? 변호사 업계는 정 총리나 황 후보자처럼 ‘전관예우(前官禮遇)’를 받을 수 있는 변호사와 판검사 경력이 없는 비(非)전관 변호사로 양분된다. 전관예우란 판검사 출신 변호사가 담당한 사건에 대해 현직에 있는 후배 판검사들이 기소나 양형(量刑) 등에서 유리하게 봐주는 걸 일컫는 말이다. 선진국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악습(惡習)이다.

최근 연봉 3000만 원을 주는 법률사무소에도 비전관 초임 변호사들의 구직 행렬이 이어졌다. 월 800만 원을 받는 국선 전담 변호사의 선발 경쟁률은 10 대 1을 넘었다고 한다. 이들 비전관에게 정 총리의 ‘세후’ 월 3000만 원 수입은 꿈같은 얘기일 것이다.

전관과 비전관 변호사 사이의 수입 격차는 그들에 대한 수요 공급의 차이 때문에 생겨난다. 전관의 공급은 적은 편이지만 수요는 엄청나다. 2011년 법무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임료가 비싸도 전관을 택하겠다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수임료가 싼 비전관을 택하겠다는 비율의 7.5배를 넘었다. 전관 변호사가 ‘유전(有錢)’ 피의자를 자신이 관할했던 지역으로 이송시킨 뒤 불기소나 ‘무죄(無罪)’로 이끌어 내기도 한다니 그 비율이 납득이 된다.

검사 출신인 김용원 변호사는 전관예우가 “전직과 현직 판검사들의 합작(合作)에 의한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왜 범죄행위일까? 부패행위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대리인(代理人·agent)이 주인(主人·principal)의 이익 대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부패라 정의한다. 주인인 국민의 대리인인 판검사가 공익(公益) 대신 자신의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행위가 바로 부패다.

판검사가 공익을 저버리고 전관 변호사를 봐주는 건 나중에 자신이 전관이 됐을 때의 예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관예우는 과거 자신이 저지른 부패행위에 대해 현재 뇌물의 형태로 보상받는 셈이다. 법조계 전관예우는 단순한 부패가 아니다. 그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통해 사법 정의(正義)를 파괴하는 엄청난 범죄행위다.

허술한 법 제도가 전관예우를 부른다. 영화 ‘부당거래’는 구속이나 기소와 관련한 결정이 검사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잘 보여준다. 영화 ‘도가니’는 판사의 양형 재량권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준다. 따라서 전관예우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판검사의 지나친 재량권을 법 제도로 제어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울러 무용지물로 전락한 전관예우금지법을 새로운 법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김능환 전 대법관은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않겠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 재취업해 많은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이제 이런 감동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킬 때가 왔다.

새 법에서는 장차관급 판검사는 퇴임 후 2년, 그 외 판검사는 재임 기간에 따라 1, 2년간 공익을 위한 무료 변론 이외의 변호사 활동은 하지 못하도록 규정할 것을 촉구한다. 이를 어길 경우 엄한 처벌과 함께 변호사 자격을 영구히 박탈할 것을 제안한다. 이 법이 취업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생각하면 판검사를 하지 말고 바로 변호사 개업을 하면 될 것이다.

모든 부패행위가 그렇듯 전관예우 역시 적발이 어렵다. 이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부고발의 장려다. 사건 의뢰인이나 변호사 사무장, 비서, 운전사 등의 내부자가 고발을 했을 때 정부는 이들을 보호하고 확실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전관예우 근절이 가능하다.

정 총리는 자신의 전관예우 문제로 이미 대통령과 국민에게 큰 빚을 졌다. 그 빚을 갚으려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로 전관예우에 따른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제도적으로 없애야 한다. 그의 노력으로 박 대통령이 약속한 ‘사회적 약자에게 법이 정의로운 방패가 되어주는 사회’가 하루빨리 도래하기를 고대한다.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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