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선기 목사의 생활신앙(35)] 성탄에 대해서 | ||||||
방선기 목사(직장사역연합 대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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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성육신 의미 바로 알아 ‘실천의 삶’ 이뤄가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 분을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신 성육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요일 4:2-3). 거룩하신 하나님이 더러운 인간의 육체를 입을 수 없다는 그럴듯하지만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주장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는 그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면서도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룩한 하나님은 죄악된 세상과는 멀리 떨어져 계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이런 사람들에게 분명한 진리를 가르쳐준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아기 예수님은 여자의 자궁 속에서 잉태되었으며 산고(産苦)를 통해서 태어나셨다. 그래서 그를 낳은 평범한 여인은 거룩한 어머니가 되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마구간이었다. 하지만 가축들이 머무는 곳이 구유에 누인 아기 때문에 거룩한 장소가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거룩한 제사장의 가정에서 태어났을 법한데 평범한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물론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니라 유다 지파의 후손이기 때문이긴 하다. 요셉은 다윗의 자손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비천한 목수 일을 했다. 예수님을 모신 가정이기 때문에 거룩한 가정이 되었다. 예수님 자신도 오랫동안 목수 일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젊은 시절을 목수 일을 하며 보내신 것을 보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셨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는 목수 일도 거룩한 일이었다. 예수님은 공적 사역을 하실 때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육신의 질병을 고치며 현실적 어려움들을 해결해주셨다. 예수님에게는 병자를 고치거나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시는 일은 육신의 일이 아니었다. 말씀을 가르치시는 일과 마찬가지로 거룩한 일이었다. 예수님은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는 달리 그들이 무시하는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셨다(마 11:19). 예수님에게는 도무지 거룩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시는 일이 바로 거룩한 일이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 그래서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으셨다(눅 7:34).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먹고 마시는 일도 거룩한 일이라고 생각하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가르치실 때도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가르치셨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나 잃어버린 양과 동전의 비유, 포도원 품꾼에 관한 비유 등은 예수님이 진리를 가르치실 때 사용된 소재들이다. 그런 일상의 일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거룩한 것으로 변화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한 일은 함께 저녁식사를 하신 것이다. 그들은 식사를 하면서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셨다. 예수님은 평범한 유월절 식사로 세상을 위해 죽으실 그 분의 살과 피를 상징했다. 그래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마다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도록 하셨다(눅 22:19). 예수님이 대속의 제물이 되신 곳은 성전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죽기 위해서 로마의 법정에 섰다. 그는 실제로 아무 죄도 없지만 로마의 법정의 재판에서 죄인이 되어서 갈보리 산에서 죽임 당하셨다. 그 당시 법으로는 정치적인 범죄로 인한 죽음이고 극악한 범죄자에게만 주어지는 극형이었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거룩한 대속의 죽음이 되었다. 또한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예수님의 영혼이 더러운 육체를 벗어나 새로운 육체를 가지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하던 그 육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사람들은 시체는 별로 가까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은 몸은 부활을 통해 거룩한 몸이 되었다. 이제 마지막 날에 영광의 몸을 입고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시며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영혼과 육체를 사랑하시고 사람들의 일상의 삶에 관련된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신 것을 본받으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전한다는 것은 예배당에 갇혀있는 예수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일상을 거룩하게 하신 분을 전하는 것이다. 나의 삶도 거룩하게 하신 예수님의 성육신의 의미를 발견해보면 특별한 성탄절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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