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선기 목사

[연재/ 방선기 목사의 생활신앙 (42)] 현실적 딜레마에 대해서

꿈 꾸는 소년 2013. 9. 9. 09:27

[연재/ 방선기 목사의 생활신앙 (42)] 현실적 딜레마에 대해서
방선기 목사(직장사역연합 대표)
2011년 02월 11일 (금) 11:50:58 방선기 ekd@kidok.com

원칙 지키는 균형 잃지 말아야

대안 적극 제시하며 딜레마 극복한 바울 지혜 필요

   
  ▲ 방선기 목사  
 
크리스천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인정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결혼은 반드시 믿는 사람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구약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한다. 유대인들에게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라고 한 명령도 있고 사도 바울이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한 말씀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고후 6:14-15).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외국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말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는 결혼도 사실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러나 결혼에 있어서 신앙은 결코 초월해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그런데도 믿는 사람들 중에 배우자의 신앙을 무시하고 결혼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내가 정말 주님을 믿는 사람인지 돌아보아야 하고, 배우자가 신앙이 없는데도 주 안에서 한 몸이 되는 결혼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결단을 해야 한다. 주님의 뜻대로 결단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더 좋은 길을 보여주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문제를 보는 현실적인 시각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교회 안에 결혼 적령기의 남녀 성비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믿는 남자들은 믿는 여자들과 결혼하는 것이 비교적 어렵지 않지만 믿는 여자들이 믿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믿는 여자들이 믿는 남자들과 결혼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면 교회 안에 독신 여성들이 꽤 많을 것이다. 독신의 은사를 받았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결혼을 하려는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실적 문제를 성경적 원칙과 어떻게 결부시켜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을 것인가?

비슷한 문제가 또 하나가 있다. 믿는 사람들은 주일성수를 반드시 해야 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주일을 지킬 수 없는 직장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주일을 지킬 수 없는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신앙이 약해지기 쉽다. 그래서 모험을 무릅쓰고 그런 직장을 포기하거나 그만 두는 결단을 하는 성도들도 있다. 주일에 있는 각종 고시에 응시하지 않는 결단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그런 결단을 통해서 신앙이 성장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이런 원칙을 지켜나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우선 현대 사회는 주일을 전통적인 방법으로 지키기 어려운 직업들이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의료인들이다. 그리고 경찰관이나 군인을 비롯한 공익 직종 직업인들도 주일성수가 쉽지 않다. 24시간 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사람들도 매우 힘들게 주일성수를 해야 한다. 좀 더 심각한 사람들은 주말에 가장 바쁜 레저 산업이나 유통 산업에 종사하는 직업인들이다.

그러나 이런 직업의 세계에도 크리스천들의 영향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창조 명령이 시행되어야 할 곳이다. 주일을 지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런 직종을 크리스천들이 기피하게 된다면 그 일터와 사업 세계는 영적 불모지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소명과 은사를 따라 어디든 가서 일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일성수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곳에 가서 일하게 될 수도 있다. 여기서 크리스천 직업인들의 깊은 딜레마가 생기는 것이다. 원칙과 현실을 과연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까?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서 믿지 않는 남자와의 결혼을 허용하고,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직장에서 일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자칫 전통적으로 지켜 온 성경적인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원칙을 현실 상황에 대한 아무런 고려도 없이 고수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포기할 것이다. 결혼을 포기하거나, 직장생활을 포기할 수도 있다. 반대로 현실에 타협하기 위해서 신앙을 포기할 수 있다. 물론 둘 다 주님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현실에 대한 고려가 없이 원칙만을 고수하는 율법주의도, 현실에 맞추기 위해 원칙을 쉽게 포기하는 편의주의도 이 문제를 푸는 해답들은 아니다.

교회는 이런 문제들을 겪으면서 성도들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지금까지 지켜온 경건한 삶의 원칙은 계속해서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믿음의 수준이 같지 않기 때문에 똑같은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원칙에 근거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권했다(롬 12:3). 어떤 이는 모든 음식을 다 먹을 믿음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믿음이 약해 채소만 먹을 수도 있다(롬 14:2). 바울 자신은 약한 자들을 위해서는 자기가 약한 자와 같이 되었다고 대안제시의 방법을 보여주었다(고전 9:22). 이런 바울의 융통성이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바울은 원칙에 근거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여 딜레마를 극복했다. 무엇보다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바로 생활신앙을 실천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