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2013.09.22/ 제25권 38호>

꿈 꾸는 소년 2013. 9. 29. 14:17

<요 14:1~3>

 

 □ 근심을 살아있다는 증거

 

 근심은 생명을 단축시키고 영혼과 인격을 파괴시키고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근심은 백해무익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마음에 금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생각해 생각해 보면 오늘 내 안에 근심이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근심, 염려, 걱정과  불안, 두려움은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런 감정들을 통하여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달는 것만으로 끝이 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근심과 염려와 슬픔과 수치심과 미움의 감정을 통해 '나는 아직 살아있구나, 살아있는 존재로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기만 하고 여전히 근심과 불안과 두려움과 슬픔과 미움과 분노 가운데 살아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는 것만큼 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명령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근심을 이겨내고 처리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근심을 이기고 물리칠 수 있는 해답은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근심의 해답은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말씀하신 다음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믿으라는 동사가 바로 현재형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믿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믿는 것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끝까지 사랑한다느 사실도 지금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끝까지 사랑한다는 사실도 지금 믿어야 합니다. 천국도 지금 믿어야 합니다. "죽어봐야 알지"라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믿음을 가질 때 근심과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내 아버지의 힘

 

 예수님은 더 나아가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내용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내 아버지의 집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2절) 주님이 가시는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내 아버지의 집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아버지의 집은 바로 천국을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천국을 여러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히11:6) 사도 바울은 천국을 가리켜 셋째 하늘 곧 삼층 천이라고 했습니다.(고후12:2)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천국을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했습니다.(계21:10) 예수님은 십자가에 함께 달려있던 한 편 강도에게 천국을 "낙원"이라고 했습니다.(눅23:43)

 

 □ 왜 예수님의 천국을 내 아버지의 집으로 말씀하셨는가?

 

 첫째로, 천국은 아버지의 품과 같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천국을 가리켜서 "내 아버지 집"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집은 곧 아버지의 품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눅16장을 보면 거지 나사로사 죽어 그 영혼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천국은 아버지의 품입니다. 아버지의 품에는 위로가 있습니다.그래서 부자는 불타는 지옥에서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라고 요청할 때 아브라함은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눅16:25) 천국은 아버지의 품과 같기에 천국에는 아버지의 위로가 있습니다. 따스함이 있고 평안함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천국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내 아버지의 집은?

 

 첫째로 풍성한 곳입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하여 아버지의 집을 "거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계속하여 내 아버지의 집을 "거할 곳, 거처"로 말씀하신 것은 천국은 결코 曖昧模糊한 추상적·관념적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머물 머무를 수 있는 실재하는 공간임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는 말은 아버지의 집의 풍성함을 말합니다. 여기서 많다는 개념은 넓다는 개념이 아니라 풍성의 개념입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사랑도, 위로도, 감사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그곳이 내 아버지의 집입니다.

 

 둘째로, 주님이 친히 예비하신 곳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신 것은 제자들을 버려두시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이 처소를 예비하러 가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아버지의 집을 친히 예비하신 것입니다. 계21:2절을 보면 주님이 친히 준비하신 천국은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단어를 가지고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곳은 아픔도 없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곳은 아픔도 없고 눈물도 없고 죽음도 없고 미움과 증오도 죄성도 없는 곳입니다.

 

 셋째로, 주님과 함께 있는 곳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떠나감으로 인하여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3절) 잠시 후면 떠나겠지만 다시 너희와 함께 영원히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천국이 내 아버지의 집입니까? 주님에 바로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아무리 좋아도 황금길이 천국이 아닙니다. 열두 진주문이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이 아버지의 집인 것은 내 사랑하는 주님이 바로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 누가 아버지의 집에 들어갈 수 있는가?

 

  그렇다면 누가 영광스러운 아버지의 집에 들어갑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입니다.(6절)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진리요 유일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믿는 자들만이 아버지의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내 아버지의 집이 있습니다.내 아버지의 집은 풍성한 곳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은 주님이 친히 예비하신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은 내 사랑의 주님과 함께 있는 곳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