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누가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는가?<2013.10.06/ 제25권 40호>

꿈 꾸는 소년 2013. 10. 13. 12:57

<요 14:8~11>

 

 □ 빌립 :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본문을 보면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8절) '보여 달라'는 말은 증명해 달라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穩全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고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말씀하셨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셨고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빌립은 "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말씀만을 가지고는 부족하니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빌립의 불신앙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빌립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9절) '어찌하여'라는 말은 빌립을 꾸짖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말씀에 의지하여 요단의 강물에 발을 내딛고 초대교회 빌립 집사처럼 말씀에 의지하여 광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된 것입니다.(요 20:29)

 

 □ 세상의 사람들 : 하나님을 보여 주소서

 

 그런데 빌립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말씀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보기를 더 원합니다. 말씀보다는 체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그 하나님을 증명해 보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말씀만으로는 부족하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시다는 말은 형체가 없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영이신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보이지 않는 영이시 하나님을 자신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보여 주었습니다.(창21:22; 창39:3) 하나님은 영이시만 육신을 입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통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영이신 아버지를 보여 주신 것처럼 육을 가진 우리도 우리의 삶과 모습을 통해 영이신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 누가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있는가?

 

 그러면 누가 영이신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 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관계가 맺어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 살아가는 자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 가운데 사는 자가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줄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 주옵소서" 빌립이 요구할 때 예수님은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기 때문에 나를 보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하여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 아버지 안에 계심을 믿어라"고 말
씀하셨습니다.(10절a,11절a) 예수님을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빌립의 요구에 하나님을 보여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특별하고도 친밀한 관계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특별하고도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만이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생활의 최고의 관건은 주님과 친밀한 사귐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생활의 목표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이유입니다. 그런데 오는 주님과 그 친밀한 사귐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을 많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복을 받으려는 사람은 많지만 주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위해 몸부림치며 애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 가운데 사는 자가 행복한 자라는 사실을…

 

 □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러면 어떻게 하면 주님과 친밀한 사귐 가운데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4:8절a) 왜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까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격적인 만남에는 마음의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친밀해 지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노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죄를 회개하고 멀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마음을 성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성결하게 하는 것은 바로 죄를 회개하고 죄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못하도록 가로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사59:2)

 

 둘째로, 진실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 도다"(시145:18) 하나님은 거짓과 위선이 아닌 진실한 마음으로 간구하는 자에게 가까이 하십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며 진실된 마음으로 간구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가까이 하십니다. 기도란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왜 기도가 영적인 호흡입니까? 우리가 기도가 막혀 호흡을 하지 않으면 죽듯이 우리의 영혼도 기도를 하지 않으면 질식을 당하여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아니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 가운데 살아가려면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누구와 오랜 시간 함께 동행하면 가까워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때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하나님께 묻는 삶입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사울이 왜 죽임을 당하였습니까?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대상10:14절a)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을 때 하나님께서 내 인생 가운데 개입하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가운데 개입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게 물으십시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 가운데 살 수 있고 친밀한 사귐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 줄 수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