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논단] 목회자의 윤리의식

꿈 꾸는 소년 2010. 10. 30. 16:31

민찬기 목사(예수인교회)
2010년 10월 27일 (수) 기독신문 ekd@kidok.com

   
  ▲ 민찬기 목사  
금실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부인은 늘 자기만 사랑하고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안주는 그런 신랑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신랑이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부인은 신랑을 따라 가기로 마음먹고 저승으로 신랑을 찾아 나섰다. 거기엔 방이 세 개가 있었다. 한 번도 바람 안 피우고 오로지 부인과 가정을 위해 살아온 사람은 장미방. 바람은 가끔 피우지만 별 사고는 안치는 사람은 백합방. 부인 몰래 바람을 많이 피워 여성편력이 많은 사람은 안개방. 부인은 당연히 신랑이 장미 방에 있을 줄 알고 찾았지만 그 방에는 한 명도 없었다. 부인은 이상하다며 백합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방에도 신랑은 보이지 않았다. 부인은 혹시 하는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안개방을 빼꼼히 열어 보았더니 남편이 군기 완장을 차고 반장으로 있더라는 유머이다.

우리는 때로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다른 결과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목회자의 윤리의식이다. 우리가 신뢰하는 목회자들은 과연 어느 방에 있을까?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학지의 설문조사에서 10년 후 한국교회가 양적으로 더 성장할 것인가를 물었다. 그 중 한국교회가 성장하지 못하고 감소할 것이라는 의견이 41%였다. 그 이유로는 목회자와 성도의 낮은 윤리적 수준 때문이라는 것이다. 목회자에게 기대되는 윤리의식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많은 것이다. 기독교는 한국에서 안티라는 말을 가장 많이 받는 종교로 여겨지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목회자의 낮은 윤리적 수준일 것이다.

일반인(비종교인)을 대상으로 ‘성직자 자질’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 대상자의 80%가 “자질 부족한 성직자 많다”라고 답했다. 이것은 비종교인 대부분이 성직자의 역할 수행에 대해 대체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비종교인이 교회에 오지 않는 이유 중 80%가 바로 목회자의 자질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목회자들의 낮은 윤리의식 수준으로 인한 사회의 기독교에 대한 신뢰도 하락은 자연히 교회의 정체와도 무관하지 않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목회자 사이에서는 고소 고발은 물론이고, 거짓말, 폭행, 살인, 성추행 등이 가까이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기독교의 인식을 추락시켜 더 많은 안티들을 양산해 내는 등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추세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청렴도와 함께 윤리 경영을 강조하며 고객에게 감동을 주지 않으면 그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워지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사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을 가지지 못한다면 비판에 직면하기 쉽다. 많은 기업들이 윤리의식을 통한 인정을 받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아래, 고객감동 경영을 캐치프래이즈로 내세웠으나 요즘은 윤리 경영을 통한 대 사회적 책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4곳 중 3곳은 10년 전과 비교해 기업의 청렴도가 개선됐다고 응답했다. 또한 윤리경영 필요성에 대해서도 90%가 필요하다고 응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제는 사업을 하려고 할 때에도 윤리경영을 추구하지 않으면 사업하기가 쉽지 않다는 증거이다. 사회는 이처럼 나날이 변해가고 있지만 목회자의 의식 수준은 하향하고 있지는 않는가?

 기독교도 오늘날 윤리의식을 요구받고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과연 기독교는 10년 전과 비교해 청렴도나 윤리의식이 개선되었냐고 물을 때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기독교가 높은 윤리의식의 요구와 달리 역행하는 모습으로 어떻게 불신자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의 닫혀진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을까? 높은 윤리의식이 없이는 산 위의 동네에 빛을 발할 수 없다.

한국의 초기 기독교는 국민의 무분별한 생활 속에 모범을 보이며, 금연, 금주, 절제 운동 등을 실천하여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며 본이 되고, 솔선수범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기독교 안티 세력들을 키워 빌미를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때에 기독교의 우월하고 높은 윤리 의식 회복을 통하여 기독교의 영향력을 높여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목회자의 윤리의식의 상실은 소명의식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소명자들은 세상의 죄악된 흐름에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명의식이 결여될 때, 세상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기독교가 목회자들의 윤리의식에 문제를 가지게 된 원인이 뭘까? 목회자들이 붙들어야 할 경건과 섬김의 도의 부제, 말씀을 자신에게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고 남에게 엄격하게 잣대를 들이대려는 무능한 태도, 좋은 본을 보였던 신앙의 선배들을 닮아가는 참 목자의 모습을 잃어버림이 아니겠는가?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을 주님 앞에서 끊임없이 개혁하며, 진실된 종의 모습의 회복과 무익한 종의 모습으로 목회자의 책임의식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는 나 같이 부족하고 쓸모없는 종을 부르시고 “나를 충성 되이 여기시어 직분을 맡기신 것”을 감사할 줄 알고,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윤리의식을 높이기 위한 부단한 자기계발, 그리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섬기기를 다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철저하게 실천해야 할 과제를 요구받고 있다.

 
 출처:기독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