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인가, 성장인가 | ||||||
맹일형 목사(인천중앙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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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부흥의 본래적인 의미는 종교 개혁자 칼빈의 표현을 빌린다면 “생명력을 잃은 신자들의 삶에 말씀과 성령으로 활기를 불어넣는 하나님의 사역”이란 의미다. 부흥은 성장의 한 동인이 될 수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부흥과 성장은 서로 일치되는 말은 아니다. 부흥과 성장의 상관관계는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합적이고 역학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쉽게 말하는 “부흥하면 성장한다”는 논리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단순 논리 때문에 우리가 쉽게 빠지는 함정이 있다. 외형적 성장은 눈에 쉽게 드러나지만 부흥은 파악하기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사안에 따라서는 오랜 시일이 걸려서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부 목회자들은 부흥보다는 눈에 드러나는 성장에 더 치중한다. 어쩌면 부흥에 대한 관심은 본래부터 없었고 거기에 따른 능력도 없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말로는 부흥을 추구하면서 외형적 성장이 곧 모든 것을 말해 준다는 식으로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회자들에게는 올바른 부흥에 대한 고민과 열망이 없다. 어떤 도구를 동원하더라도 교회만 성장하면 된다는 식의 발상으로만 꽉 차 있다. 성경적이든 성경적이 아니든 상관없이 단지 숫자만 늘어나면 된다는 식이다. 믿음의 선배들이 그렇게 보수하기를 원했던 개혁신앙과 신학은 이제 교회 안에서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고루하고 현실적이지 못해 교회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성장에 대한 관심이 본질에 대한 관심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이미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교회 성장을 위해 경영학, 심리학과 같은 세상 학문이 자연스럽게 목회에 도입되었고, 가톨릭 영성에 뿌리를 둔 검증되지 않은 영성훈련들이 공공연히 자리를 잡아 왔다. 이름 난 대형 교회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은 무조건 옳은 것처럼 여과 없이 받아들인다. 그것은 단지 그 교회의 성장을 모방하려는 야욕에 불과하다. 한국 교회는 짧은 역사 속에 급성장을 이뤘다. 이제는 내실을 기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진정으로 부흥을 체험한 실력 있는 지도자와 신자들을 배출해야 한다. 과거 초대교회 신자들이 복음으로 세상을 뒤바꾸었듯이 영향력 있는 교인들이 나와야 한다. 이제 성장 일변도의 논리는 내려놓고 교회의 본래적인 모습과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길이 성장의 시작이요, 첩경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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