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누가 割禮者인가?<2010.11.7/ 제22권 45호>

꿈 꾸는 소년 2010. 11. 7. 14:22

☞ <빌 3:1~3>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개들을 삼가고 行惡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傷害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이 성령으로 奉仕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 주 안에서 기뻐하라.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의 주제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를 보면 기쁨이라는 단어가 무려 18번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이 자신에게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고 다툼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1:18). 또 사도 바울은 자신을 위해서 충성하고 헌신한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자신이 전제가  되어 희생이 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할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겠다고 했습니다(2:17~18). 이것을 보면 바울의 마음 속에는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감옥이라는 상황도 인간관계의 아품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지금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계속적으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나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1절a)"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바울은 기뻐하라고 말하면서 그냥 기뻐하라고 말하지 않고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주 안에서"입니다. 그러면 주 안에서의 기쁨은 무엇을 말합니까?

 첫째로, 주님으로 말미암는 기쁨이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님으로 말미암는  기쁨을 말합니다. 주님 때문에 누리는 기쁨을 말합니다. 둘째로, 환경을 초월한 기쁨이었습니다.

 주 안에서의 기쁨은 환경을 초월한 기쁨입니다. 상황을 뛰어넘는 영광스럽고도 신비한 기쁨입니다. 죽음도 빼앗아갈 수 없는 그런 기쁨입니다. 인생의 밤 가운데서 좋으신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인생의 풍랑 가운데서도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라고 노래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주 안에서의 기쁨은 순간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상황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였어도 그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는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였습니다(합3:17~18). 저는 우리 오륜의 모든 지체들이 구원의 은총과 다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하여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삼가고 삼가고 삼가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2절)" 바울은 지금 율법주의자들을 '개들', '행악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삼가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삼가하는 말은 주의를 綿密히 관찰하여 그들의 정체를 알고 그들을 조심하여 또한 행동으로 분명하게 거부하라는 말합니다. 어정쩡하게 하지 말고 그들을 조심하며 분명하게 행동으로 거부하라고 말합니다. 한 번만 '삼가고'라는 말을 사용해도 될 터인데 3번이나 반복하여 '삼가고'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보면 바울이 얼마나 율법주의자들을 경계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으려는 자들을 향하여 첫째로, 개들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개는 집에서 기르는 개가 아니라 거리를 徘徊하면서 들에서 사는 들개를 말합니다. 그러면 왜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을 개들로 표현하였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탐욕이 가득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사56:11). 그리고 거룩한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마7:6).

 둘째로, 율법주의자들을 행악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행악자들이란 바로 악한 일꾼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고 속으로는 이리의 마음을 품은 자들입니다. 행악자는 복음을 위해 일한다고 자기의 욕심만 채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몸을 상해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할례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한채 할례를 받고 할례받지 못한 자들을 무시하고 輕蔑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것은 진정한 할례가 아니라 몸을 상해하는 것에 不過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율법주의자들을 개들, 행악자, 몸을 상해하는 자로 비유하면서 그들을 삼갈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을 삼가지 않으면 이들로부터 좋지 못한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 누가 할례파인가?

 

 그러면 누가 진정 할례를 받은 자입니까? 신약시대의 할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정말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여러분은 이미 영적인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3절에서 구체적으로 누가 할례파 곧 할례를 받은 자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3절)"

 

 1.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는 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는 자가 바로 진정한 할례를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봉사하고'하는 단어는 '예배를 드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라는 말의 일차적인 의미는 바로 우리가 공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그래서 KJV 영어성경도 worship God in the spirit 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성령안에서 드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도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성령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운행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이 영으로 생명으로 다가오는 다가오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 자

 진정한 할례자는 누구인가?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아닌 자신들의 태생이나 외적인 의식이나 율법의 유산과 민족적인 특권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를 자랑하는 자가 진정으로 할례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주 예수로 말미암아 왔고 주 예수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인생의 구주이시고 왕이 되시고 삶의 이유가 되신다면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합니다.

 

 3.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자

 여기서 말하는 육체는 자신의 구원에 대한 소망의 기초가 되는 그리스도를 떠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율법주의자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남이 할례를 받음이 구원의 길이고 구원을 보장받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오늘도 말씀보다 예수 그리스도보다 자신의 양심을 더 신뢰하고 자신의 건강과 물질과 인생을 더 신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할례를 받은 자는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더 신뢰하는 자들입니다. ◑